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551
한자 禮巖書院
이칭/별칭 김해 예암서원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삼안로112번길 36[삼방동 10-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현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09년 12월연표보기 - 예암사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22년연표보기 - 예암사에서 예암서원으로 승격
훼철|철거 시기/일시 1869년연표보기 - 예암서원 훼철[서원철폐령]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8년연표보기 - 예암서원 복설
훼철|철거 시기/일시 1995년연표보기 - 예암서원 훼철[토지 구획 사업]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5년연표보기 - 예암서원 이전 복설
현 소재지 예암서원 - 경상남도 김해시 삼안로112번길 36[삼방동 10-1]지도보기
성격 서원
양식 팔작지붕[강당]|솟을대문[외삼문]
정면 칸수 5칸[강당]|3칸[경모사]
측면 칸수 3칸[강당]|2칸[경모사]
소유자 창녕조씨 김해예암종문회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삼방동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예암서원(禮巖書院)은 조선 후기 학자 조이추(曺爾樞)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조이추의 자는 원경(元卿), 호는 사우당(四友堂), 본관은 창녕이다. 아버지는 조전(曺恮)이며, 김해 활천동(活川洞)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우가 독실하였고, ‘경의(敬義)’ 두 글자로 평생 동안 몸가짐을 단속하였다. 저술로 3권 1책의 『사우당집』이 있다.

[위치]

예암서원김해시 삼방동 10-1번지에 있다.

[변천]

조이추가 사망하고 2년 뒤인 1709년(숙종 35) 12월에 예암사(禮巖祠)를 창건하여 향사를 거행한 것이 예암서원의 효시이다. 1822년(순조 22) 도내 유림이 통문을 돌리며 호칭의 승격을 논의하여 예암서원이 되었다. 1869년(고종 6)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78년 후손과 유림의 후원으로 복설되었다. 이후 1995년 토지 구획 사업으로 다시 철거되었다가, 2005년 후손과 유림의 후원을 받아 현재 위치로 이전하여 복설하였다.

[형태]

강당과 사당 경모사(景慕祠), 내삼문, 동재와 서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경모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삼문인 경숭문(景崇門)은 3칸이고, 동재 이연재(怡然齋)와 서재 양성재(養性齋)는 모두 3칸으로 되어 있다. 외삼문인 창례문(彰禮門)은 솟을대문에 3칸으로 구성되었으며, 이 밖의 건물로 측사(側舍)가 있다.

[현황]

예암서원의 소유자는 창녕조씨 김해예암종문회이며, 매년 음력 3월 23일에 향사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

예암서원은 김해 지역 창녕조씨 김해예암종문의 구심점이자, 17세기 후반 김해 지역 유림들 활동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적 의미가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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