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70
한자 裵婰
영어공식명칭 Bae Jeon
이칭/별칭 중견(仲見),차산(此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43년연표보기 - 배전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99년 2월 26일연표보기 - 배전 사망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시
묘소 배전 묘소 -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지도보기
성격 서화가
성별
본관 김해

[정의]

조선 후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서화가.

[개설]

배전(裵婰)[1843~1899]의 본관은 김해이다. 자는 중견(仲見)이고, 호는 차산(此山)이다. ‘차산’이란 호는 중국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방도자불우(訪道者不遇)」 가운데 ‘지재차산중(只在此山中)’에서 따온 것이다. 배전의 집안은 대대로 창녕에서 살았는데, 아버지 배영혁(裵永爀)이 제주 고씨와 혼인한 후 김해로 이사하였다.

[활동 사항]

배전은 시·서·화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팔능이라 불릴 만큼 다재다능하였다. 그러나 과거에는 여러 번 낙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870년대부터 ‘경매실(庚梅室)’이라는 서화실을 마련하고, 10여 년을 서울에서 문인이자 서화가로 활동하였다. 친형인 배환(裵焕)의 도움을 받아 흥선대원군 문하에 출입하면서 서화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육교시사(六橋詩社)의 동인들과 교유하였으며, 강위(姜瑋)를 통해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또한 홍문관부제학 이재긍(李載兢)의 도움을 받아 연인이었던 강담운(姜澹雲)의 시집 『지재당고』를 출간하여 주기도 하였다.

배전은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 이후에 김해에 은거하였다. 당시 김해 지역은 계모임 형식으로 모여 시를 짓고 난(蘭)을 그리는 등 문예적인 풍토가 일반화되어 있었다. 이러한 문화는 배전의 서화 활동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배전은 김해 문인화의 초석으로 역할 하였으며, 김종대(金鍾大), 배병민(裵秉民) 등의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1899년 2월 26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배전의 작품은 『산남고취(山南鼓吹)』에 44수, 『대동시선』에 8제(題) 10수, 『김해읍지』에 8제 8수, 『봉래관집(蓬萊舘集)』에 1수, 『조야시선(朝野詩選)』에 11수가 수록되어 있다. 서화로는 「묵매도(墨梅圖)」, 「묵난도(墨蘭圖)」, 「난죽도(蘭竹圖)」, 「석난도(石蘭圖)」, 「묵연도(墨蓮圖)」, 「파초도(芭蕉圖)」 등이 전한다.

[묘소]

배전의 무덤은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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