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76
한자 安慜
영어공식명칭 Ahn Min
이칭/별칭 사심,모헌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강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39년연표보기 - 안민 출생
몰년 시기/일시 1592년 4월 23일연표보기 - 안민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05년 - 안민 선무원종공신 추증
출생지 김해부 시례 -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시례마을
활동지 입석강 - 경상남도 김해시 불암동 선암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정의]

임진왜란 당시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의병.

[가계]

안민(安慜)[1539~1592]의 본관은 순흥으로, 안향(安珦)[1243~1306]의 10대손이다. 자는 사심(士心)이고, 호는 모헌(茅憲)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사성(司成) 안수(安琇)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진사 안창공(安昌恭)이다. 할아버지는 사직(司直)을 지낸 안우(安玉+祐)이고,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안공진(安公軫)이다. 안공진 때 김해부로 이주하였다. 어머니는 남평 문씨로 진사 남응규(南應奎)의 딸이다. 안민은 전주 최씨 최운철(崔雲喆)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 셋을 두었다. 맏아들 안신갑(安信甲)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의병을 일으켜 싸워 명성이 있었는데,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활동 사항]

안민은 음사(蔭仕)로 사헌부감찰을 지내다가 고향 김해에 내려와 있을 때 임진왜란을 맞았다.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에 있던 감로사에 안향의 시판이 있었는데, 시판이 오래되어 다시 판각하러 갔다가 김해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안민은 “난리를 당하여 달아나는 것은 나라의 녹을 먹는 자의 할 일이 아니다. 하물며 우리 집안은 대대로 국은을 입고 녹을 받고 있음에랴”라고 하고, 1592년 4월 23일에 승려 100여 명과 함께 김해성으로 향하였다. 김해성으로 향하던 안민은 도중에 입석강[현 경상남도 김해시 불암동 선암]에서 왜군과 만나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왜군이 안민의 순절에 감복하여 길가에 “조선의 충신 안민이 여기서 죽었다”라고 쓰인 팻말을 세워 놓았다고 한다.

[묘소]

안민이 전사한 뒤, 입석강 길가에서 시신을 수습하여 팔곡(八谷) 선영에 반장(返葬)하였다.

[상훈과 추모]

안민은 사후에 판결사(判决事)로 추증되었으며, 선조로부터 정려를 하사받았다. 1605년에는 선무원종공신에 추증되었다. 불암동에는 안민순절유적비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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