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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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潘碩澈 |
이칭/별칭 | 반석철(潘碩徹),우강(友江),연촌(烟村)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유영옥 |
출생지 | 경상남도 함안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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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이주지 -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
묘소|단소 | 반석철 묘소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설창리 효동 |
사당|배향지 | 반석철 정려비 -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하촌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거제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거주한 효자.
[개설]
반석철(潘碩澈)은 『성종실록』에 효행이 실려 있는 김해 지역의 대표적 효행 인물이다. 또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김해 읍지인 『분성여지승람신증초』[1730년대]부터 『교남지』[1940]에 이르는 약 10종의 김해 읍지에 빠지지 않고 효행이 수록되어 있다.
[가계]
반석철의 본관은 거제이다. 자는 우강(友江)이고, 호는 연촌(烟村)이다. 아버지는 만호(萬戶) 반형(潘衡)이고, 어머니는 숙인(淑人) 이씨이다. 아들은 반성해(潘成海), 손자는 반희노(潘希老)이다. 사위로는 이한(李漢), 조문한(曺文漢)이 있다. 조문한의 딸이자 반석철의 외손녀인 조씨는 효녀로 이름나서 조정에 알려졌다.
[활동 사항]
반석철은 함안에서 태어나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으로 이주하였다. 세조 때 장흥고주부를 역임하였다. 부모가 별세하자 직접 무덤을 조성하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초상을 마치고도 죽은 부모를 산 사람처럼 섬겼다. 이러한 효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다. 첫째, 어느 제삿날 신에게 음식을 권하느라 문을 닫고 엎드려 있자, 제사상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보았더니 술잔이 비워져 있었다. 둘째, 가뭄이 든 해에 반석철이 울면서 제수 마련을 걱정하자, 그날 밤 반석철의 전답에만 소나기가 내렸고, 또 그 전답 한쪽에서 샘물이 솟아나 사람들이 ‘효감천(孝感泉)’이라 불렀다. 셋째, 한번은 꿀을 사서 과자를 빚어 제사상에 올리고는 제례 막판에 잠깐 엎드려 있었는데, 부모님이 과자를 잡숫다가 바로 토하는 꿈을 꾸었다. 놀라서 꿀을 구매한 집에 물으니 잘못하여 벌이 들어갔다고 하였다. 이후로 반석철은 제사에 꿀로 만든 밀과(蜜果)를 절대 올리지 않았다. 1470년(성종 1) 2월 경상도관찰사 윤자(尹慈)가 반석철의 효행을 아뢰어 포상이 결정되었다.
[묘소]
반석철의 무덤은 김해부 북쪽 30리 황산(黃山)에 조성되었는데, 지금의 김해시 진영읍 설창리 효동(孝洞)에 해당한다. 효동은 반석철의 묘소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마을 이름인데, 호랑이도 반석철의 효성에 감동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효동을 범골[호곡(虎谷)]이라고도 한다.
[상훈과 추모]
반석철의 정려비는 처음 진례면 송정리 주변의 자여도(自如道) 도로변에 있었는데, 현재는 진례면 시례리 하촌에 ‘창녕조효녀지려(昌寧曺孝女之閭)’ 및 ‘반효자기적비(潘孝子紀蹟碑)’와 같이 서 있다. 현재 하촌에는 반석철과 조씨를 테마로 하는 하촌효문화마을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