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95 |
---|---|
한자 | 金用浩 |
영어공식명칭 | Kim Yongho |
이칭/별칭 | 계현(啓賢),사호(四豪)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인덕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11월 5일 - 김용호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5일 - 김용호 진영리장터 만세 시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6일 - 김용호 부산지방법원 징역 1년 6개월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27년 10월 4일 - 김용호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용호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사산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용호(金用浩)[1892~1927]는 1892년 11월 5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사산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이고, 자는 계현(啓賢), 호는 사호(四豪)이다. 아버지는 김덕재(金德才)이고, 부인은 강릉 류씨 류선장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용호는 1919년 4월 5일 진영리장터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는 안기호(安騏鎬)·김종만(金鍾萬) 등 30여 명의 서당 학생이 주도하여 시작되었고, 오후 5시경에는 2,000여 명으로 증가한 시위대가 함께 독립 만세를 불렀다. 시위대가 진영헌병주재소로 몰려갔고, 그 과정에서 김용호는 헌병 오장 아오키 분지로[靑木文次郞]와 충돌하여 격투 끝에 팔·다리·배 등에 상처를 입고 체포되었다.
김용호는 4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공무집행방해로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았다. 불복하여 공소를 제기하였지만, 5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옥고의 여독으로 1927년 10월 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용호는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