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金容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96
한자 金容煥
영어공식명칭 Kim Yonghwan
이칭/별칭 금본용환(金本容煥)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인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9년 10월 10일연표보기 - 김용환(金容煥)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31일 - 김용환(金容煥) 진영리장터 만세 시위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6일 - 김용환(金容煥) 부산지방법원 징역 1년 6개월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51년 2월 11일연표보기 - 김용환(金容煥)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8년연표보기 - 김용환(金容煥)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진영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용환(金容煥)[1899~1951]은 1899년 10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진영리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금본용환(金本容煥)이다. 김용환은 1919년 3월 31일 김우현·김정태·김성도 등과 함께 진영리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용환 등은 3월 29일에 진영리 도로에서 돈을 갹출하여 김정태에게 만세 시위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도록 하였고, 30일에는 진영읍 여래리 산속에서 깃발·태극기·전단지 등을 만들었다. 31일 장날 오후 1시경이 되자, 김용환은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대나무 막대기에 매달고 종이로 만든 태극기를 살포하며,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김용환은 주모자로 체포되어 4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불복하여 공소를 제기하였지만, 2월 19일에 대구 복심법원에서 원심이 확정되었다. 1951년 2월 1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용환은 2018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 「김성도 외 3인 판결문」(대구복심법원, 1919. 5. 19.)
  • 『김해인물지』 (김해문화원, 1989)
  • 『김해시사』 10(김해시사편찬위원회, 2024)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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