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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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渭式 |
영어공식명칭 | Jang Wisik |
이칭/별칭 | 장석민(張錫旼)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인덕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장위식(張渭式)[1890~1942]은 1890년 4월 9일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북부리에서 태어났으며, 사립 개통학교[현 웅천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장위식은 1919년 4월 5일 김해 진영리장터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만세 시위는 안기호(安騏鎬)·김종만(金鍾萬) 등 서당 학생 30여 명이 주도하여 시작되었고, 오후 5시경에는 2,000여 명으로 증가한 시위대가 함께 독립 만세를 불렀다. 헌병 오장 아오키 분지로[靑木文次郞] 등은 총칼로 시위대를 진압하며 주모자를 체포하였는데, 장위식도 이때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 형을 선고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김해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42년 10월 30일에 사망하였다.
[묘소]
장위식의 유해는 2008년 3월 7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장위식은 2004년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또한 김해독립기념광장의 김해 지역 3·1운동 기념물에 장위식의 이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