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709
한자 鄭德允
영어공식명칭 Chung Deokyo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종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 정덕윤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2일 - 정덕윤 무계리장터 만세 시위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69년 4월 27일연표보기 - 정덕윤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23년연표보기 - 정덕윤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시 신문동 지도보기
활동지 무계리장터 -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로 287-22[무계동 189-3]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정덕윤(鄭德允, 丁德允)[1894~1969]은 1894년에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신문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2일 김해군 장유면 무계리[현 경상남도 김해시 무계동] 무계리장터에 모인 3천여 명의 군중이 독립 만세를 부르며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행진하였는데, 김해 지역에서 가장 크게 일어난 만세 시위였다.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일본 군경은 총을 쏘며 위협하였다. 진압 과정에서 3명이 순국하였고, 정덕윤·김승태·김종훤 등 10여 명이 검거되었다.

해방 후 유족이 제출한 공적서에 의하면, 정덕윤무계리장터 만세 시위를 모의한 주동자 중 한 명이다. 정덕윤은 태극기를 만들고 10여 일 동안 인근 마을을 돌며 주민을 동원하였다. 의거 당일에는 일본 군경의 총탄에 쓰러진 동지를 업고 결사 항쟁하다 체포되었다고 한다. 정덕윤은 처음 부산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3개월에 집행 유예 2년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후 징역 3개월로 변경되었다. 출옥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애국청년단에 가입하는 등 독립운동 활동을 이어갔다. 1925년 귀국하여 신간회 김해지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69년 4월 27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덕윤은 202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김해시 내덕동 용두산 정상에는 무계리장터 만세 시위를 기념하기 위해 1967년 5월 30일에 장유면민들이 세운 김해3·1운동기념탑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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