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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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弼愛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하지영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필애(金弼愛)는 1896년경 경상남도 김해에서 태어났다. 마산 의신여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1919년에 추산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한편, 의신여학교 교사·학생들과 함께 구마산장날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또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경상남도지부장을 맡아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였는데, 1920년에는 상하이독립단 통영원조회가 통영과 하동·사천·고성·김해·양산 등지에서 모금한 군자금을 받아 임시정부로 송부하였다. 1924년에는 조선청년총동맹과 사회주의 여성 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1920년대 중반부터는 김해여자청년회 등 김해 지역 사회 단체 소속으로 경상남도 여러 사회단체가 주관하는 강연회 등에 참여하면서 여성 문제에 관하여 연설하였다. 1924년 1월 마산 혜성사(彗星社) 주최로 열린 사상문제강연회에서는 ‘여성운동의 제일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였고, 1925년 김해신진여자회에서 개최한 강연회에서는 ‘신진여자의 모임’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8년 3월 김해청년동맹 여자부에서는 ‘부인데이의 의미’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8년 김해청년동맹 여자부는 기존의 김해여자청년회와 김해신진여자회를 해체하고 근우회 김회지회를 설립하였다. 김필애는 근우회 김해지회 설립 과정에서 준비위원으로 참여하였고, 3월 24일 개최된 설립대회에서 임시 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로도 김회지회 대표로서 지회의 각종 활동을 주도하였다. 1929년에는 신간회 김해지회 등에서 운영하여 온 김해여자야학을 근우회 김해지회가 인수하여 경영하였는데, 학교를 폐쇄하려는 일제 당국의 탄압에 대항하여 싸우기도 하였다. 1930년 근우회 김회지회 제3회 정기대회에서 정문부(政文部)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이러한 지회 활동을 바탕으로 김필애는 근우회 중앙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 7월에 열린 근우회전국임시대회에서 김해지회 대표로 참석하여 부의장으로 선출되었고, 1929년 7월에 열린 제2회 전국대회에서는 33인 중앙집행위원 중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상훈과 추모]
김필애는 1963년 제4회 3·1문화상 근로건설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