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731
한자 金必壽
이칭/별칭 김필수(金弼壽),김찬해(金灿海),김찬해(金燦海),박혜숙(朴惠淑),재노반,따노바,차노바,치야노파(チヤノ-パ),최성려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배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5년 4월 21일연표보기 - 김필수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6년 - 김필수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김필수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928년 7월 - 김필수 근우회 중앙집행위원 취임
수학 시기/일시 1932년 5월 - 김필수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6년 3월 - 김필수 함흥지방법원 징역 3년 6월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72년 11월 23일연표보기 - 김필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0년연표보기 - 김필수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경상남도 김해시 지내동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묘소 김필수 묘소 - 중국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근우회 중앙집행위원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필수(金必壽)[1905~1972]는 1905년 4월 21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지내동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김필수(金弼壽), 박혜숙(朴惠淑), 재노반, 따노바, 차노바, 치야노파(チヤノ-パ), 최성려 등 다양한 이명을 사용하였다. 광복 이후 중국 옌볜(延邊) 조선족자치구에 체류할 때의 이름은 김찬해(金灿海, 金燦海)였다.

[활동 사항]

김필수는 1922년 서울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현 동덕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당시 교원 권태희(權泰熙)로부터 민족 운동과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926년에 졸업한 뒤 1928년까지 2년 동안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이때 고광수(高光洙)의 지도로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고, 조선공산주의청년회에 가입하여 독서회와 웅변 모임 등을 조직하였다. 김필수가 속한 단체는 화요파가 중심이 된 고려공산청년회로 판단되며, 1928년 3월에 김필수는 학생부 위원이 되었다. 1926년 12월 서울에서 조직된 중앙여자청년동맹에 참여하였고, 1928년 7월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8년 10월 소련으로 건너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東邦勞力者共産大學)에 입학하였다. 1932년 5월 대학을 졸업하고, 모스크바 우제르나휴양소에서 국제 노동 운동과 지하공작에 대해 배웠다. 1932년 9월 국제직업동맹 중앙본부로부터 함흥·흥남 등을 중심으로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라는 비밀 임무를 받고, 1933년 초 국내로 잠입하였다. 1933년 5월부터는 함경남도 흥남·원산·함흥 등에서 태평양노동조합 계통의 적색노동조합 건설과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한 지하공작 활동을 하였다. 그 결과 1935년 1월 흥남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36년 3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6월 형을 선고받고,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석방된 이후에는 중국 지린성[吉林省]에서 생활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였으며, 1947년 1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부녀동맹 등 여성 운동에 앞장섰다. 1955년 5월에는 옌볜사범학교의 제1부 교장으로, 1960년 이후에는 옌볜조선족자치주 민정처 부처장, 시찰실 시찰원 등의 직책을 수행하였다. 문화대혁명 때 ‘반역자’, ‘소련 특무’로 박해를 받아 1972년 11월 23일 사망하였다.

[묘소]

김필수의 무덤은 중국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필수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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