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7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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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朋彦 |
영어공식명칭 | Ahn Bungeon |
이칭/별칭 | 안붕원(安朋遠),장유(長兪),육천(育泉),뇌연(雷淵),갑천병수(甲川柄叟)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순 |
출생 시기/일시 | 1904년 - 안붕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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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76년 - 안붕언 사망 |
출생지 |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청천리 신기마을 |
묘소 | 안붕언 묘소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수조리 건너편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광주(廣州) |
[정의]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한학자.
[개설]
안붕언(安朋彦)[1904~1976]은 1904년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청천리 신기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어릴 적 이름은 안붕원(安朋遠)이며, 자는 장유(長兪), 호는 육천(育泉), 불명(佛名)은 뇌연(雷淵)이다. 만년에는 갑천병수(甲川柄叟)라는 호도 사용하였다. 아버지는 「파리장서」에 이름을 올린 137명의 유림 중 한 명인 안효진(安孝珍)이다. 부인은 김해 김씨, 안동 권씨이며, 각각 딸과 아들을 낳았다. 경전과 역사서에 널리 통하였으며, 초서에도 능하였다.
[활동 사항]
안붕언은 변영만(卞榮晩)[1889~1954]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문적으로 교유하였고, 대한민국 외교의 기초를 다진 변영태(卞榮泰)[1892~1969]와도 교유하였다. 또한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이며, 해방 후에 제헌국회의원과 해인대학[현 경남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한 최범술(崔凡述)[1904~1979]과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후배로는 안붕언 문집의 서문을 쓴 이가원(李家源), 화가인 허백련(許百鍊), 부산의 서예가 오제봉(吳濟峯) 등이 있다. 이외에도 안붕언은 이승만이 대만 총통 장제스[蔣介石][1887~1975]에게 친서를 보낼 때 글씨를 썼는데, 장제스가 안붕언의 글씨를 보고는 교유하자며 서한을 보내왔다고 한다.
안붕언은 「터를 잡아 살며」라는 시를 남겼는데, 무척산 아래 살 곳을 정하고 집을 세웠다는 것으로 보아 말년에는 고향 김해에 내려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집과 경상남도 각지의 비문 등을 통해서 볼 때 안붕언은 김해 및 경상남도 지역 한학자들과 꾸준히 교유하고 있었다.
[저술 및 작품]
안붕언의 글을 모은 『육천재문초』를 1985년 육천학회에서 발간하였다. 9권 1책이며, 시·서(書)·잡저 등 전통 한문학의 다양한 장르의 글이 실렸다. 서문은 이가원이 썼다.
[묘소]
안붕언의 무덤은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수조리 건너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