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7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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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墢 |
이칭/별칭 | 달중(達中),춘전(春田)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병욱 |
출생 시기/일시 | 1874년 1월 26일 - 허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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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8년 - 허발 곡물상 개업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허발 경상남도 학무위원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허발 합성학교 인수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 - 허발 조선소작인상조회 김해지회 회장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 허발 김해금융조합장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 허발 김해교육회 이사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25년 - 허발 김해교육회 회장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 허발 김해군 면협의회원 당선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 허발 경상남도 도평의회원 당선 |
몰년 시기/일시 | 1931년 6월 12일 - 허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7년 - 허발·박석권 선생 공적기념비 건립 |
출생지 | 경상남도 김해시 안동 |
학교|수학지 | 측량학교 - 서울특별시 |
묘소 | 허발 묘소 - 경상남도 김해시 율하동 |
성격 | 자산가|교육 운동가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대표 경력 | 김해교육회 회장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자산가이자 교육 운동가.
[가계]
허발(許墢)[1874~1931]은 1874년 1월 26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안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이다. 자는 달중(達中)이고, 호는 춘전(春田)이다. 아버지는 참봉 허관(許爟)이며, 아들로 허만용을 두었다.
[활동 사항]
허발은 1894년 식년시에서 진사 3등으로 합격하였고, 이후 서울의 측량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익혔다. 이후 1918년 진영역 앞에서 곡물상을 시작하였으며, 1923년에는 허발상점과 정미공장도 운영하는 등 재산을 늘려 갔다. 또 협신주식회사 주주, 대한협회 회원[1908], 경남인쇄주식회사 대주주, 경상남도 학무위원[1919] 등을 비롯하여 김해수리조합장[1921], 조선소작인상조회 김해지회 회장[1922], 김해금융조합장[1923], 김해의생회(金海醫生會) 회원[1924], 경남은행 감사역[1925], 김해군 삼대품평회(三大品評會) 회장[1926] 등의 중역을 맡았다. 이외에 김해군 면협의회원[1929] 및 경상남도 도평의회원[1930], 김해군부마선낙동강가교및도로기성회 회장[1930] 등의 직책도 맡아 활동하였다.
허발은 소작인들에게 덕망 있는 지주였으며, 지역민들이 어려울 때마다 수많은 구휼·자선 활동으로 구호에 힘썼다. 1917년 김해공립보통학교[현 김해동광초등학교] 실습지 이전료로 12원을 기부한 것과 1918년 수재민 구호를 위해 백미 20두를 기부한 것이 대표적이다. 허발의 선행 중 일부는 조선총독부에 알려져 목배(木杯)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교육 운동에도 관심을 가져 1908년 김해 기독명덕여학교, 울산 일신학교[현 병영초등학교]에 출연하였고, 1921년에는 김해교육회를 통해 재정난으로 휴학하게 된 합성학교[현 김해합성초등학교]를 인수하여 유지·경영하였다. 이후 김해교육회를 재단 법인화하여 이사[1924]와 회장[1925]에 선임되었다. 1926년에는 김해의 일부 유지들이 합성학교의 건물 등을 김해공립농업학교[현 김해생명과학고등학교]의 설립에 충당하고자 하면서 분쟁이 벌어졌는데, 허발은 합성학교의 설립자로서 “사립합성학교의 파멸은 김해 인사의 치욕일 뿐 아니라 전 조선인 사회의 치욕”이라며 강력히 규탄하였다. 비록 경상남도 당국이 제시한 타협안을 수용하여 기존 합성학교의 건물을 경상남도에 인도하고 신축 교사로 이전하기는 하였지만, 교육 문제를 민족 운동의 일환으로 여겨 매진하였던 허발의 소신을 알 수 있다.
허발은 1931년 6월 12일 사망하였는데, 당시 언론에서는 병사로 보도하였다. 그러나 훗날 허발의 부인은 허발이 퇴근길에 활천계곡에서 일본인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하였다고 증언하였다. 허발의 장례식은 합성학교에서 7월 3일에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묘소]
허발의 무덤은 경상남도 김해시 율하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해합성초등학교 내에 1967년 건립된 ‘허발·박석권 선생 공적기념비’가 있다. 비문에 따르면, 허발은 1922년 논 200마지기 값어치인 2만 원을 상하이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하였고, 또 논 500석지기를 희사하여 합성학교의 2층 건물을 짓게 하였는데, 이러한 허발의 선행은 “김해 사람과 또 배달민족 전체의 큰 자랑이며 명예”라고 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