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7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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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五郞 |
영어공식명칭 | Kim Ohra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순 |
출생 시기/일시 | 1944년 4월 5일 - 김오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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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57년 - 김오랑 김해삼성국민학교 졸업 |
수학 시기/일시 | 1965년 - 김오랑 육군사관학교 입교 |
활동 시기/일시 | 1969년 - 김오랑 소위 임관 |
활동 시기/일시 | 1979년 - 김오랑 육군특수전사령관 비서실장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979년 12월 13일 - 김오랑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오랑 중령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2014년 - 김오랑 보국훈장 삼일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2014년 - 김오랑 흉상 건립 |
출생지 | 경상남도 김해시 활천로36번길 61-4[삼정동 119] |
학교|수학지 | 김해삼성국민학교 - 경상남도 김해시 인제로51번길 42[삼정동 635-1] |
학교|수학지 | 김해중학교 - 경상남도 김해시 호계로 456[부원동 39] |
학교|수학지 | 김해농업고등학교 - 경상남도 김해시 금관대로 1239[외동 743] |
학교|수학지 | 육군사관학교 -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574[공릉동 1-1]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산41-2] |
성격 | 군인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정의]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군인.
[가계]
김오랑(金五郞)[1944~1979]은 1944년 4월 5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삼정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종수, 어머니는 임순이이며, 4남 1녀 중 막내아들이다. 아내는 백영옥이며, 자식은 없다.
[활동 사항]
김오랑은 1951년 9월 김해삼성국민학교[현 김해삼성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57년에 졸업하였다. 국민학교 시절 김오랑은 체구는 작았으나, 6년 동안 반장을 지냈다. 집이 가난하여 시장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집안일을 돕느라 바로 진학하지 못하고, 1958년에 김해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중학생 때도 통솔력이 뛰어나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였다. 김해농업고등학교[현 김해생명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동기들과 ‘칠형(七瑩)’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였는데, 이때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할 것을 결심하였다. 1965년 육군사관학교[25기]에 입교하여 생도가 되었다.
1969년에 보병 소위로 임관하여 1970년에는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에 파병되었다. 이때 편지를 주고받던 백영옥과 결혼하였다. 이후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소령으로 진급하여 특전사로 복귀하였다. 1979년에는 특수전사령부 행정 장교로 발령받아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1979년 12·12군사반란이 일어나자, 김오랑은 백영옥에게 “오늘 저녁도 못 들어갈 것 같아. 미안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당시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던 신군부 측에서 김오랑을 회유하였으나 거절하고, 특전사령관을 호위하였다. 결국 김오랑은 제3공수여단 소속 박종규 중령이 이끄는 신군부 측 무장 병력에 홀로 맞서다가 가슴과 배 등에 6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전사하였다. 1979년 12월 13일 새벽의 일이다.
[묘소]
김오랑은 국립서울현충원 제29묘역[2923호]에 안장되었다. 사망 당시 특전사령부 뒷산에 암매장되었으나, 1980년 2월 28일 부대장으로 장례식을 치르고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김오랑은 1990년 1월 소령에서 중령으로 1계급 특진이 추서되었다. 1996년 김오랑중령추모회가 발족되어 매년 6월 6일과 12월 13일에 현충원에서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2013년 4월 29일에 「고 김오랑 중령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 촉구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2014년 1월 14일에는 보국훈장 삼일장이 추서되었다. 참군인김오랑추모사업회는 김해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2014년 6월, 김오랑이 다녔던 모교 김해삼성초등학교와 삼성중학교 사잇길 근린공원에 김오랑 흉상을 건립하였다. 2022년 국방부에서는 김오랑의 사망을 ‘전사’로 판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