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풀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1228
한자 成主-
이칭/별칭 「성조풀이」,「성주신가」,「성조신가」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기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82년 8월 5일 - 「성주풀이」 심복동에게 채록
채록 시기/일시 1982년 8월 12일 - 「성주풀이」 서진철에게 채록
채록 시기/일시 1982년 8월 23일 - 「성주풀이」 김상대에게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3년 - 「성주풀이」 『한국구비문학대계』8-9에 수록
채록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내룡리 지도보기
채록지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우계리 지도보기
채록지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선지리 지도보기
성격 민요
가창자/시연자 김상대|서진철|심복동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가정의 안녕과 번영, 풍요를 축원하며 부르는 민요.

[채록/수집 상황]

「성주풀이」는 1983년 간행된 『한국구비문학대계』8-9 경상남도 김해시·김해군 편에 3편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는 1982년 8월 5일 김해시 주촌면 선지리에서 김승찬, 박기범이 심복동에게서 채록하였다. 두 번째는 1982년 8월 12일 김해시 상동면 우계리에서 김승찬, 박기범이 서진철에게서 채록하였다. 세 번째는 1982년 8월 23일 김해시 진영읍 내룡리에서 김승찬, 강덕희가 김상대에게서 채록하였다.

[구성 및 형식]

「성주풀이」는 서사무가적인 것과 민요적인 것이 있다. 서사무가 「성주풀이」는 중부 지방의 내용과 경상남도 지역의 내용이 다르다. 김해의 민요 「성주풀이」는 경상남도 지역에서 전해지는 서사무가 「성주풀이」의 내용이 민요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김해의 민요 「성주풀이」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지신밟기 등의 세시 의식에서 불리던 무가 「성주풀이」의 성격을 간직한 것이다. 무가적 성격 혹은 성주신을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에 성주신의 본을 풀어 주는 내용이나 재목의 근본에 대한 내용이 전해진다. 다른 하나는 가창과 오락의 성격이 강화된 것으로 성주신의 본 풀이나 재목의 근본에 대한 내용이 소략하게 혹은 생략된 경우가 많다. 대신 축원의 기능과 함께 음악적 성격이 강하게 담긴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라는 전렴과 후렴이 강화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무가 「성주풀이」는 ‘성주본 - 제비원 - 재목 구하기 - 벌목 및 운반 - 집 건축 - 치장 - 축원’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가창과 오락의 기능이 강화된 「성주풀이」는 축원 부분이 강화되거나 확장되어 있는데, 무가의 신성성이 약화되고 세속화되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내용]

1. 세시요의 성격이 강한 「성주풀이」

어여루 성주님아/ 천녀성주 만년성주/ 이 성주가 누성주냐?/ 경상도 안동땅에/ 제비원이 본일래라/ 제비원도 본아니라/ 강남서 나온제비/ 솔씨한분 물어다가/ 거지봉산 던졌더니/ 그솔이 점점자라나서/ 타박솔이 되열적에/[후략]

2. 가창오락요의 성격이 강한 「성주풀이」

낙양산 십리하에/ 높고낮은 저무덤은/ 연연호걸이 그누구냐/ 절세가인 하지마라/ 우리도요로콤 잘노다가/ 아차한번 실수가되여/ 저건너저무덤 되고보면/ 어느친구가 날찾으면/ 어느가족이 날찾으리/ 에라만수는 대신이드는구나/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세시 의식의 하나로 경상남도 지역에서 정초에 지신밟기를 할 때에 「성주풀이」가 불렸다. 지역을 불문하고 ‘성주신’은 가택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으로 여겨졌다. 특히 집과 관련해서는 성주신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성주풀이」는 가정의 이사나 주택의 신축, 혹은 정초의 지신밟기 등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고 활발히 불려 왔다.

[현황]

현재의 「성주풀이」는 세시 의식요나 축원의 기능보다는 대표적인 남도 민요로 여겨지고 있다. 성주본풀이나 솔씨[재목]의 근본에 대한 내용은 약술되거나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의 전렴으로 시작하여 ‘낙양산 십리허에’의 노랫말로 이루어진 형태가 많다.

[의의와 평가]

김해 지역의 「성주풀이」는 경기 남부, 충청 지역, 전라 지역 등지에서 성주굿 의식에 불리던 노래가 민요화되어 민간에 전파된 것이다. 본래는 무가적 「성주풀이」의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민요화되면서 축원의 부분만 남거나 강화된 형태로 전해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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