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국 왕자 노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1229
한자 -國 王子 -
이칭/별칭 「안락국태자경(安樂國太子經)」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기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83년 1월 17일 - 「악양국 왕자 노래」 강분이에게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3년 - 「악양국 왕자 노래」 『한국구비문학대계』8-9에 수록
채록지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 1구 지도보기
성격 무가
기능 구분 의식요
가창자/시연자 강분이[여, 49]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미타삼존불의 본생담을 담은 「안락국태자경」을 무가화한 노래.

[개설]

「악양국 왕자 노래」는 아미타불, 좌우에서 보좌하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뜻하는 미타삼존불의 본생담을 담은 「안락국태자경(安樂國太子經)」의 내용을 노래로 부른 것이다. 「안락국태자경」의 내용은 소설 「안락국태자전」, 제주도 무가 「이공본풀이」의 내용과 흡사하다.

[채록/수집 상황]

「악양국 왕자 노래」는 1983년 간행된 『한국구비문학대계』8-9 경상남도 김해시·김해군 편에 수록되어 있다. 1983년 1월 17일 김승찬이 김해시 동상동 1구에서 강분이[여, 49]가 부르는 것을 채록하였다. 강분이는 무녀[강신무]로 「악양국 왕자 노래」를 책자로 접한 것이 아니라 굿마당에서 듣고 외운 것이라 한다.

[내용]

옛날에 한 나라에서 대왕과 왕후가 나라를 다스렸는데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하루는 비구니가 와서 시주를 청하여 왕후가 서말 서되 서홉의 쌀을 시주하였다. 비구니는 석달 열흘 동안 절에 와서 백일기도를 드리면 불공을 지어 주겠다고 한다. 대왕은 왕후를 말리지만 결국 승낙하여 왕후가 불공을 드리러 다녀온다.

몇 년 뒤 부처가 비구니에게 꽃밭에 물을 줄 시녀 셋을 구해 오라고 하자, 비구니는 다시 궁궐에 가서 왕후에게 사람을 보시해 줄 것을 요청하고, 왕후는 흔쾌히 시녀 셋을 보낸다. 또 다시 3년이 흘러 부처가 꽃에 물을 줄 물감독으로 대왕을 데려오라고 한다. 비구니가 대왕에게 말을 전하니 대왕이 흔쾌히 승낙한다. 이때 왕후는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었는데 대왕을 만류하였으나 대왕의 뜻이 확고하여 따라나서기로 한다. 세 사람이 부처의 궁전으로 가는데 왕후는 임신한 몸으로 더 이상 갈 수가 없자 자신의 몸을 팔아 보시를 하고자 한다. 결국 왕후는 자인장자[자현장자]의 집에 몸종으로 팔리고, 대왕과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아들이 태어나면 ‘악양국[安樂國]’, 딸이 태어나면 ‘악양녀[安樂女]’로 이름을 짓기로 약속한다. 다음날 대왕은 떠나고 몇 달 뒤 왕후는 아들을 낳아 이름을 ‘악양국’으로 짓는다.

5~6년이 지나 악양국이 아버지의 존재를 궁금해 한다.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된 악양국이 자인장자의 눈을 피해 아버지를 만나러 떠나고, 왕후는 자인장자에게 죽임을 당한다. 한편 악양국은 부처의 꽃밭에서 물감독을 하고 있는 대왕을 만나고, 대왕은 악양국에게 돌아갈 것을 재촉한다. 악양국은 자인장자의 집에 돌아오는 나무꾼을 만나 왕후가 죽은 사실을 듣게 된다. 악양국이 어머니의 시체가 있는 곳을 찾아가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자 하늘에서 꽃가마가 내려온다. 악양국은 꽃가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서 신선이 된 왕후와 상봉한다. 대왕 역시 부처가 되었으며 자인장자는 벼락을 맞는 최후를 맞이한다.

[의의와 평가]

김해 지역에서 채록된 「악양국 왕자 노래」는 특정한 굿에서 불리는 무가는 아니며, 주로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가정에서 부르는 것이라고 전해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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