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0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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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牛洞里 |
영어공식명칭 | Ud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우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4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하계면 우동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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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28년 4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하계면 우동리에서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면 우동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2년 10월 1일 -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면 우동리에서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 우동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5월 10일 -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 우동리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우동리로 개편 |
성격 | 법정리 |
면적 | 4.62㎢ |
가구수 | 81가구 |
인구[남/여] | 129명[남 67명/여 62명]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우동리는 진영읍의 남쪽에서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지역이다. 지역에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300년 전 함종 어씨(咸從 魚氏)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였으며 창녕 성씨(昌寧 成氏)와 사돈을 맺으면서 그 후손들이 함께 살며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명칭 유래]
우동리는 자연 마을인 우동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우동은 소가 누운 형국의 와우산(臥牛山) 아래에 형성된 마을이라 원래는 소동, 소골이라 부르다가 한자로 ‘우동(牛洞)’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우동리에 삼국 시대 가야의 무덤군인 김해 우동 고분군(金海 牛洞 古墳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곳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에는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하계면(下界面)에 속하였다. 하계면이 속한 김해 지역은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 김해군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경상남도 김해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하계면(下界面) 6개 리에 중북면 4개 리, 상북면(上北面) 일부를 병합하여 김해군의 14개 법정면 중 하나인 하계면(荷溪面)으로 하고, 옛 하계면 우동리에 서천을 합하여 하계면의 법정리인 우동리로 하였다. 하계면은 1928년 4월 1일 진영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42년 10월 1일 진영면이 진영읍으로 승격하였다. 진영읍은 1981년 7월 1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분리될 때 김해군의 관할로 남았다. 1995년 5월 10일 김해시와 김해군이 통합하여 김해시 진영읍 우동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우동리의 남쪽에 내정병산의 북동쪽 자락이 있어 산지를 이루는 반면에 북쪽은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지류들이 모여 주항천을 이루며 주변에 범람원을 형성하여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 산지와 북쪽 평지 사이에는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만들어 둔 못과 저수지가 곳곳에 있다.
[현황]
2023년 12월 31일 기준 우동리의 면적은 4.62㎢이며, 81가구, 129명[남자 67명, 여자 6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 마을로 우동과 서천이 있다. 서천은 원래 우동 서쪽에 있었는데, 1944년에서 1949년 사이 농업용수 개발 사업으로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마을이 수몰되어 저수지 아래 지금의 자리로 이주하였다. 4~5세기경 덧널무덤과 돌방무덤이 발굴된 김해 우동 고분군이 있으며, 창녕 성씨의 재실인 태평재(太平齋)가 있다. 우동리의 북쪽에는 남해고속도로가 동서로 횡단하며, 진영휴게소와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진영JC가 있다. 우동은 작고 한적한 마을인데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마을로 들어가려면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통과해야 하므로 오히려 접근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또한 진영휴게소와 진영JC 건설로 교통량이 늘어나 인근 지역은 차량 소음이 문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