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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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匙山里 |
영어공식명칭 | Sis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시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미영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시산리는 한림면의 최북단인 낙동강 하류에 형성된 지역이다.
[명칭 유래]
시산리(匙山里)는 자연 마을인 시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낙동강 변에 제방을 쌓기 전 있던 언덕이 숟가락처럼 생겼는데, 숟가락 모양의 언덕을 우리말로는 ‘술뫼’라고 하며, 이를 한자화한 것이 ‘시산’이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시산리는 조선 후기까지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하북면(下北面) 지역이었다. 하북면이 속한 김해 지역은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진주부 김해군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가 시행되면서 경상남도 김해군으로 개편되었다. 당시 하북면에서 상북면(上北面)이 분리되었는데, 시산리는 화포천의 북쪽에 자리하여 가동리와 가산리, 장방리와 함께 상북면 지역이 되었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상북면의 4개 리와 하북면의 7개 리를 병합하여 김해군의 14개 법정면 중 하나인 이북면으로 하고, 시산리에 가동리와 경상남도 밀양군 하남면 명례리 각 일부를 합하여 이북면의 법정리인 시산리로 하였다. 이북면은 1981년 7월 1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분리될 때 김해군의 관할로 남았다. 1987년 1월 1일 이북면이 한림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5년 5월 10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하여 김해시 한림면 시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화포천이 북류하여 낙동강에 합류한다. 서쪽에는 봉화산 북쪽의 잔구성 바위들인 내리바위가 있고, 용수 관리를 위한 시산정수장이 있다. 동남쪽에는 술뫼들인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1930년대 낙동강 제방 공사가 완료되기 전에는 낙동강에 화포천 물이 합류하면서 많은 퇴적 물질이 쌓여 여러 형태의 퇴적 지형이 형성되었다. 제방 축조 이후 시산리의 범람원 중 배후 습지는 농경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낙동강 변에 생태 공원 등이 조성되어 다양한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현황]
2023년 12월 31일 기준 시산리의 면적은 7.53㎢이며, 294가구, 550명[남자 271명, 여자 27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 마을로 시산, 신촌, 시전, 시호가 있다. 예전에는 낙동강 변에 명례진이라는 나루터가 있어서 배를 이용해 지금의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까지 오갔다고 한다. 1905년 10월 마산선 철도[경전선]가 개통되고 1918년 영업을 시작하면서 시산리의 남동쪽으로 기차가 다니게 되었다. 화포천 배수장은 1976년 11월 공사에 들어가 1983년 8월 배수문이 완공되었는데, 이팔양수장이라고도 하였다. 배수장 옆 마을인 신촌은 이 시기에 시산에서 분리되었다.
시산리의 들은 1984년 경지 정리를 하면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대도시의 공업 기능 교외화가 시작되어 한림면 곳곳에 농공 단지가 조성되었는데, 시산리에도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자연 마을의 모습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2002년 8월 태풍 루사에 의한 폭우로 낙동강 제방이 무너지며 시산리의 농경지뿐 아니라 면 소재지까지 물에 잠기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수해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김해시에서 화포천 수문 및 배수장을 증설하여 관리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낙동강 변에 술뫼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낙동강 제방을 따라 낙동강 종주 자전거 길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