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가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298
한자 任那加羅
이칭/별칭 임나가량(任那加良)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이영식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또는 경상북도 고령군의 가야국으로 추정되는 고대 왕국의 명칭.

[개설]

임나가라(任那加羅)는 「광개토왕릉비」에 기록된 가야국의 별칭이다. 「광개토왕릉비」는 고구려가 399년 신라의 구원 요청에 따라, 400년에 5만의 보병과 기병을 파견하여, 가야와 왜에게 공략되고 있던 ‘신라성(新羅城)’을 탈환하고, 달아나는 가야와 왜병을 쫓아가 임나가라(任那加羅) 종발성(從拔城)에 이르니, 성이 곧바로 항복하였다고 기록하였다.

학계에서는 임나가라에 대해 경상남도 김해시와 경상북도 고령군의 가야국으로 보는 견해로 나뉘고 있다. 신라성 곧 경주에서 남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구려의 진공 방향과 5세기 초 가야 제국에서 고구려를 상대할 수 있으면서, 왜군과의 연합 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 해양 왕국의 지리적 조건 등을 고려해, 경상남도 김해로 추정하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고구려인이 가야임나가라로 인식하고 표기하였음이 확인되는 귀중한 기록이다.

[검토]

임나가라와 관련된 문헌 기록상 가장 비슷한 용례로는 『송서』 왜국전의 ‘임나가라(任那加羅)’와 『삼국사기』 강수전에 강수(强首)의 출신지로 기록된 ‘임나가량(任那加良)’이 있다.

전자는 해당 기록에 따르면 임나와 가라 2개국의 이름이 나열된 것임이 분명하여 비교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에 비해 후자는 ‘라(羅)’와 ‘량(良)’의 한자 표기에 차이가 있지만, 고대의 발음은 동일하게 ‘임나가라’였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여기에 강수의 또 다른 출신 지명으로 소개된 중원경이 충청북도 충주이고, 충주는 대가야 우륵의 탄금대로 잘 알려진 것처럼, 562년에 신라가 대가야 유민들을 사민시켰던 곳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강수의 출신지인 ‘임나가라’는 대가야였던 경상북도 고령으로 파악해야한다는 주장이 있다.

일본의 『신찬성씨록』에서도 ‘임나국카라(任那國賀羅)의 카시츠왕(賀室王)’이라는 아주 유사한 용례가 확인된다. ‘카시츠왕(賀室王)’은 『삼국사기』에서 가야금 12곡의 작곡을 명했던 ‘가야국(加耶國)의 가실왕(嘉悉王)’과 같은 인물로 추정되고 있는데, 여기에서 가야국은 대가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광개토왕릉비」의 ‘임나가라’에 대한 지명 비정에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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