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316
한자 邑誌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배상현

[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대상으로 편찬한 지리지.

[개설]

읍지(邑誌)란 각 고을의 지리지로서, 부(府)·목(牧)·군(郡)·현(縣) 등을 단위로 편찬된 저작물이다. 읍지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이후 집중적으로 편찬될 수 있었던 것은, 각 고을의 사회적·경제적 성장과 함께 호구(戶口)·전결(田結)·군액(軍額)·공부(貢賦) 등을 보충하고자 하는 국가적 필요성이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였다.

[1700년대 읍지류]

현전하는 김해도호부의 읍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733~1736년 사이에 작성된 『분성여지승람신증초(盆城輿地勝覽新增抄)』이다. 『분성여지승람』을 증보하기 위해 작성된 지지(地誌)로 추정되며, 『신증동국여지승람』 김해도호부의 내용을 바탕으로 몇 차례에 걸쳐 수정과 증보된 김해의 지리와 인구, 논밭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786년(정조 10)에 편찬된 필사본 『김해부읍지』김해도호부에서 발행한 것으로, ‘방리(坊里)’조는 상동면·주촌면·진례면 등 19개 면으로 이루어진 행정 편제를 보여준다. 또 전결은 1785년[을사년], 호구는 1786년[병오식]을 기준으로 하고 있어 18세기 후반 김해부의 사회·경제상을 파악하는데 필수적인 자료로서 그 가치를 발하고 있다.

[1800년대 읍지류]

1832년경 편찬의 『경상도읍지』 제10책에 수록된 『김해부읍지』는 호구와 전부를 1831년[신묘식]을 기준으로 파악하였으며, 전부에 토지 결수 정보와 조세 정보를 함께 기록하였던 특징을 보인다. 19세기 초반의 사회·경제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자료로, 경상도 71개 고을에 대하여 통일된 항목과 기술 형식을 취하였기 때문에 통계 자료로서 활용 가치가 높다.

1895년(고종 32) 편찬된 필사본 『김해읍지』는 중앙정부의 ‘읍지상송령(邑誌上送令)’에 따라 김해도호부가 편찬하였던 것으로, 같은 해 의정부에서 편찬한 『영남읍지』에 수록되었다. 본문의 구성은 1832년 『김해부읍지』의 내용을 준용하고 있으며, 전부 항목에서는 전세미(田稅米)와 대동미 외에도, 화속세(火粟稅)와 균청구관결전(均廳句管結錢) 등이 표시되어 있다.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김해읍지』는 전국 읍지상송령에 따라 김해군에서 편찬한 읍지였다. 본문의 내용에 고대 가락국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 눈길을 끈다. ‘산천’조에는 건국 신화, ‘능묘’조에는 수로왕허왕후 능(陵)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다. 인물 관련 조항의 비중이 높아진 것도 볼 수 있는데, ‘사환(宦蹟)’조에서는 조선 명종~고종까지 왕대 별로 정리되어 있다. 호구와 전결은 1899년[기해식]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1900년대 읍지류]

1929년 김해읍지속수회(金海邑誌續修會)가 펴낸 『김해읍지』는 목차 구성과 내용 측면에서 여러 변화가 감지된다. ‘방리’조는 1918년 개편된 김해 지역의 행정 편제를 반영하고 있으며, ‘도서(島嶼)’에는 신호도(新湖島)가 추가되어 낙동강 하구의 변화를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산업’에서는 농산과 잠업, 공산(工産) 등으로 나누어 생산 품목을 기록하고 있다. 문화 부문에서는 문예와 잡지가, 사회 부문에서는 자선을 포함해 눈길을 끈다. 이러한 변화는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확대된 편자들의 사회 인식이 지지(地誌)의 구성에서도 일부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