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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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山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양훈 |
[정의]
고려 전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덕산리에 있었던 역참.
[개설]
덕산역(德山驛)은 고려 전기에 실시된 22역도제 중 금주도에 속한 31개 역 중 하나였다. 조선 시대에는 세조 연간에 41역도제로 개편하면서 자여도(自如道)에 소속되었다가 18세기 말~19세기 초에 황산도로 이속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덕산역이 언제 처음 설치되었는지는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다. 다만, 고려 현종 연간[1010~1031년]에 정비된 전국 단위의 육상 교통망 22역도 중 하나인 금주도에 포함되었다. 덕산역은 김해와 양산 간의 사람과 물자의 원활한 왕래를 위하여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덕산역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高麗史)』 권82, 「병지(兵志)」 참역(站驛) 조에 “금주도는 31역을 관장한다. 덕산(德山)·성잉(省仍)·적항(赤頂)·금곡(金谷)·대역(大驛)[금주(金州)]…”라고 기록된 것이다. 이후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 다양한 문헌에 기록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자여도에 속한 역은 …덕산…”라고 기록되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덕산역(德山驛) 부 동쪽 37리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되었는데, 『여지도서』에는 “덕산역원은 부의 동쪽 37리에 있다. 동쪽으로 양산 황산역이 15리, 남쪽으로 동래 소산역이 30리, 서쪽으로 남역이 30리, 북쪽으로 금곡역이 60리가 떨어져 있다. 대마 1필, 중마 2필, 복마 8필, 역리 200인, 노(奴) 5구(口)는 도망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786년 편찬된 『대전통편』에서는 자여도에 속하였지만, 1804년에 작성된 「가경구년자여도갑자식형지안(嘉慶九年自如道甲子式形止案)」에는 덕산역이 보이지 않는 점으로 보아 덕산역이 황산도에 이속(移屬)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변천]
덕산역은 고려 전기 22역도 중 금주도에 속하였던 역참이었다가, 1462년(세조 8) 8월 5일 각 도의 역로를 정비할 때 자여도 역승(自如道 驛丞)에 포함된 13역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수록된 전국 41개 역도 중 자여도에 속한 15역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후 1786~1804년 사이에 황산도에 속하였다.
[의의와 평가]
덕산역은 조선 시대 역원 운영과 자여도, 황산도의 복원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