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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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김양훈 |
[정의]
고려 전기부터 1896년까지 경상남도 김해시 삼정동 남역마을에 있었던 역참.
[개설]
남역(南驛)은 고려 시대 22역도 중 금주도에 속한 31개역 중 하나인 ‘대역(大驛)’으로 추정되며. 조선 시대에는 세조 연간에 41역도제로 개편하면서 자여도(自如道)에 속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남역이 언제 처음 설치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현종 연간[1010~1031년]에 정비된 전국 단위의 육상교통망 22역도 중 하나인 금주도에 포함된 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기록]
남역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 김해도호부에 “역이 6개 있는데, 남역(南驛) 덕산(德山) 금곡(金谷) 생법(省法) 적항(赤項) 대산신역(大山新驛)”이라고 기록된 것이다. 이후부터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 다양한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역의 현황에 대해 보다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남역은 부 동쪽 5리에 있으며, 동쪽으로 덕산역이 30리, 남쪽으로 적항역이 30리, 서쪽으로 생법역이 30리, 북쪽으로 금곡역이 30리 떨어져 있다. 대마 2필, 중마 2필, 복마 8필, 역리 45인”이라고 적혀 있다. 1804년에 작성된 「가경구년자여도갑자식형지안(嘉慶九年自如道甲子式形止案)」에서는 남역에 역리 158명, 보인 49명이 있었으며, 역참을 운영한 주요 성씨는 김해 허씨라고 전하고 있다..
[변천]
남역은 1462년(세조 8) 8월 5일에 각 도의 역로를 정비할 때 자여도 역승(自如道 驛丞)에 포함된 13역 중의 하나가 되었다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수록된 전국 41개 역도 중 자여도에 속한 15역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의의와 평가]
남역은 조선 시대 자여도와 김해 시내의 옛길을 복원하는데 주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