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362
한자 草嶺院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양훈

[정의]

조선 시대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에 있었던 국영 숙박 시설.

[개설]

초령원남역덕산역 사이에 위치하며, 조선 시대 김해와 양산을 오가는 관료들을 위해 설치한 국영 숙박 시설이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초령원이 언제 설치되었는지는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다. 다만, 『경상도속찬지리』에 김해 지역 11개 원 중 하나로 기록된 점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이미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관련 기록]

초령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69년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 진주목 김해의 원우(院宇)조에 “부의 남쪽 석계지 초령원[府南石階地草嶺院]”이라고 기록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김해도호부에는 “초령원은 부의 남쪽 30리에 있다.[草嶺院 在府南三十里]”라고 적혀 있다. 한편, 『분성여지승람신증초』[1730년대]에는 “초령원은 부의 남쪽 30리에 있었다. 지금은 폐하였다.[草嶺院 在府南三十里 今廢]”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해부읍지』[1786년]에는 ”남정원 이수원 황산원 흥복원 노현원 초령원 북정자원 삼기원 해양원은 모두 지금은 폐하였다.[南亭院 梸樹院 黄山院 興福院 露峴院 草嶺院 北亭子院 三岐院 海陽院 竝今廢]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의 읍지는 대체로 이것을 따르고 있다. 『김해읍지』[1929년]에는 『김해부읍지』의 기록에 “고종 광무 원년 모두 폐하였다.[高宗光武元年 竝廢]”라는 내용을 추가하였다.

[변천]

초령원『김해읍지』[1929년]에 의하면 1896년(고종 광무 1)에 폐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분성여지승람신증초』에 이미 폐지된 사실을 적고 있어 1730년대 이전에 폐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초령원은 조선 시대 김해 지역의 교통로 복원과 역원 운영을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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