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당나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368
이칭/별칭 월당진,동원진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양훈

[정의]

조선 시대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월촌리에 있었던 나루.

[개설]

달당나루는 월당진이라고도 하며, 조선 시대에는 동원진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김해 대동면에서 양산 물금읍으로 연결되었던 나루이다. 나루 지명은 나루가 있는 월당마을에서 유래되었으며 ‘월당’은 달음개향이 있었기에 달 월(月) 자를 차용하여 이름을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태종 재위 시에 조운, 운송 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통교로 비롯된 일본인의 왕래 편의를 제공하고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낙동강 수로의 곳곳에 나루를 설치하였는데, 월당진도 이 때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기록]

달당나루는 1895년에 편찬된 『조선지지』에 월당진과 병기하고 있다. 동원진이라고도 불렸는데, 위치에 대해 김해 월촌리, 양산 물금, 부산 금곡동 등으로 여러 견해가 있다. 『여지도서』에 “동원진은 덕산역 아래에 있으며 부의 동쪽 4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었고, 『분성여지승람신증초』 등 각종 김해읍지류에는 “동원진(東院津) 김해부 동쪽 40리에 있다. 황산강(黃山江) 하류인데 사람들은 월당진(月堂津)이라 한다”고 되어 있는 점에서 동원진은 김해시 대동면 월촌리로 비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청구도』·『해동지도』·『광여도』·『대동여지도』에 월당진 혹은 동원진이 표기된 점도 월촌리의 비정을 뒷받침한다.

[의의와 평가]

달당나루낙동강을 넘나드는 교통로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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