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미증식계획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382
한자 産米增殖計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전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0~1925년 - 제1차 산미증식계획 추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6~1934년 - 제2차 산미증식계획 추진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진행된 미곡 증산 계획.

[개설]

일제는 자국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에서 토지 조사 사업을 진행하여 토지 매매와 저당이 가능하도록 하는 한편, 지주 중심의 토지 소유권 문제를 정리하였다. 조선 총독부는 토지 조사 사업의 완료를 전후한 1917년 조선수리조합령을 공포하여 산미 증식 계획의 사전 토대 작업을 진행하였고, 1920년부터 본격적으로 산미 증식 계획에 돌입하였다. 산미 증식 계획은 품종 개량, 경종법 개선 등 농사 개량 사업과 개간, 간척에 의한 농지 확장, 지목 교환 및 변경, 관개 시설의 설치 및 개선 등 농지 개량 사업으로 나뉘어 추진되었다.

[산미증식계획과 김해]

김해 지역에는 1912년 김해수리조합, 1916년 대저수리조합, 1920년 하동수리조합이 설립되었는데, 김해수리조합과 대저수리조합은 1914년부터 1917년까지 방수, 배수, 관개 시설 공사를 마친 상태였다. 따라서 산미 증식계획 기간 동안 하동수리조합은 방수, 배수, 관개 시설 공사를 진행하였고, 다른 수리 조합은 관개 개선 사업을 진행하였다. 60여 만 원의 공사비를 들여 진행한 이 사업으로 몽리 면적 49.6㎢ 정도의 경지를 완비하였다. 이는 1932년 당시 김해군 총 경지 면적 약 248㎢ 중 잡종지, 임야, 기타 등을 합친 총면적의 4할이 넘는 면적이었다.

하지만 풍수해로 인한 제방 파괴와 바닷물의 범람 때문에 시설 보수 공사가 지속적으로 요구되었다. 특히 1925년 대홍수는 낙동강 인근 대부분의 수리 조합 시설을 파괴할 정도로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에 조선 총독부는 제2차 산미 증식 계획과 함께 1926년부터 낙동강 개수 공사를 추진하였다. 낙동강 개수 공사는 1934년 완공 예정이었지만 예기에 마치지 못하고 1939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마저도 처음 계획한 바를 완성한 것은 아니었다.

농사 개량 사업과 관련하여서는 품종 개량과 경종법 개선을 위해 산미개량조합, 비료사용조합 등이 설립되었고, 경상남도와 김해군은 강습회 및 지주 간담회 등을 자주 개최하였다. 경상남도와 김해군은 농사 개량을 위한 각종 강습회를 주기로 열었는데, 예를 들어 1927년에는 경상남도 농무과 주최로 김해를 비롯한 도내 주요 농업 지역 약 19.8㎢를 대상으로 배수구 채굴, 저수 실행과 관련한 강습회를 열었다. 1928년에는 49.6㎢ 정도로 확대하였으며, 선정된 농업 지도인 60명을 통해 배수구 채굴 실시, 저수 실행 등을 교육하였다. 한편, 김해군은 지주간담회를 통해 미곡의 품종 통일, 토지 심경, 퇴비 증산, 녹비 재배, 석탄 절약 등을 협의하고 비료, 농구, 창고 등의 저리 자금 대부도 논의하였다. 1930년대로 들어오면 농사 개량 사업은 농촌 진흥 운동 아래에서 진행되었는데, 이때는 군 농회 등을 통해 농사 개량과 부업 장려 등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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