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수리조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397
한자 金海水利組合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전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2년 11월 9일연표보기 - 김해수리조합 설립 인가
성격 수리 조합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수리 조합.

[설립 목적]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식량과 원료 공급지로 조성하고자 하였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경제 정책 중 하나가 토지 조사 사업이었고, 이를 토대로 두 차례에 걸쳐 산미 증식 계획이 추진되었다. 산미 증식 계획은 토지의 소유권을 획정하고 식민지 지주제 하에서 미곡을 대량 증산하여 일본에 이출하기 위한 계획으로, 농지 개량과 농사 개량 두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이 가운데 농지 개량과 긴밀한 관계를 지닌 것이 수리 조합이었다. 일본은 러일전쟁과 을사조약을 토대로 통감부 시기부터 수리조합조례와 수리조합 설립요령 및 모범규약을 공포하여 수리 조합 설립을 전국적으로 촉진하였는데, 이때 김해수리조합도 설립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변천]

김해수리조합은 1908년 12월 15일 창립총회를 거쳐 1912년 11월 9일 정식 인가되었다. 전국 여섯 번째 설립 인가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김해수리조합은 설립 이래 농사 개량과 함께 농지 개량을 위한 설비를 갖추었다. 우선, 1914년부터 1916년까지 3기에 걸쳐 설비 공사를 진행하였다. 1기에는 낙동강의 범람을 방수하기 위한 제방 설치 공사를 실시하였다. 선암 부근에서 강변을 따라 가락면 죽림리[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죽림동]를 거쳐 김해읍 이동리[현 경상남도 김해시 이동]까지 이르는 구간에 제1호부터 제6호 제방까지 축조되었다. 이때 9개소의 석조 수문과 대소 교량 50여 개도 설치되었다.

2기[1915년]에는 하천 개수 공사를 통해 김해읍부터 김천에 이르는 도로가 생겼으며, 김해 선암 간 도로 개수 사업과 연결되었다. 3기[1916년]에는 관개 배수 공사를 실시하여 답 7.9㎢에 직접 관개하는 양수 시설과 전체 약 19.8㎢에 물을 댈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였다. 하지만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계속된 홍수로 제방이 붕괴되는 등 수리 조합 설비가 피해를 입었고, 조선총독부는 1926년부터 10개년에 걸쳐 낙동강 개수공사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자연 관개가 불가능하여 가락면의 식만양수장과 김해읍의 마찰양수장을 통해 양수한 물로 관개하였다.

[현황]

김해수리조합은 1912년부터 1921년까지는 김덕재(金悳在)가, 1921년부터 1929년까지는 허발(許墢)이, 1929년부터 1939년까지는 다시 김덕재(金悳在)가 조합장을 지냈다.

1913년 확인되는 지주총대는 다음과 같다. 일본인으로는 이소가이[磯谷喜三郞], 하자마[迫間保太郞], 일한공동주식회사, 동양척식주식회사, 오가와[小川常太郞], 오우키[扇要], 우에야마[上山商行], 요코야마[橫山亮一], 다카세[高瀨秀實], 다나카[中村光平], 사베[左部平三郞], 우라가미[浦上謙造], 구스다[楠田郁太郞], 아키야마[秋山武彦], 사사키[佐佐木太石工門], 사와[澤九五平], 마사히사[正久孫一郞], 시마자키[島崎眞逐], 모리[森義一], 아마노[天野春吉], 아사야[淺谷治助], 후타마타[二又光太郞], 미츠타케[滿武龜一], 조선흥업주식회사 등이다. 또, 조선인 지주총대는 박대근, 배동령, 김병식, 박재원, 정대연, 배병기, 강경화, 박병수, 허돈, 허훤, 장석호, 김진상, 박재익, 김자언, 박국필, 박순경, 김두헌, 김화윤, 김정상, 문석주, 문재언, 김자언, 하응팔, 박기종, 박치순 등이다.

몽리 구역은 인가 당시인 1912년에는 총 4개면 17개 리로, 활천면 4개 리[불암리·어방리·마마리·남역리], 가락면 2개 리[식만리·봉림리], 좌부면 7개 리[다전리·부원리·강창리·흥동리·전하리·고서리·삼산리], 칠산면 4개 리[풍류리·화목리·음법리·이동리]였다. 1927년 몽리 구역은 총 16개 리가 확인되는데, 김해면 13개 리[불암리·지내리·마마리·어방리·남역리·부원동·강창리·회현리·전하리·오동리·훙류리·화목리·이동리], 가락면 3개 리[식만리·죽림리·죽동리]이다.

[의의와 평가]

김해수리조합은 일제의 산미 증식 계획 아래 미곡 증산을 위한 농지 개량과 농사 개량의 중요한 기구로 설립되었다. 방수, 배수, 관개를 위한 시설을 설치하고 농지 개량을 추진한 김해 지역 최대의 수리 조합이었다. 하지만 낙동강 변에 축조한 제방은 일제 강점기 내내 풍수해를 막지 못하였고, 피해도 상당하였다. 자연 개발이 다시 자연재해로 돌아왔던 것이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