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학교 설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388
한자 近代 學校 設立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전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98년 - 육영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7년연표보기 - 광흥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8년 1월연표보기 - 조양의숙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8년 6월연표보기 - 향명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8년 11월 - 동명학교 설립 추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8년연표보기 - 농무기술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9년 4월 10일연표보기 - 합성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0년 4월연표보기 - 신명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0년 6월연표보기 - 진영학교 설립
최초 설립지 육영학교 - 경상남도 김해시 호계로500번길 15-15[동상동 534]지도보기
최초 설립지 동명학교 -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
최초 설립지 조양의숙 -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지도보기
최초 설립지 합성학교 -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 111-12[서상동 172]지도보기
최초 설립지 광흥학교 -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지도보기
최초 설립지 농무기술학교 - 경상남도 김해시
최초 설립지 향명학교 - 경상남도 김해시 부원동 지도보기
최초 설립지 신명학교 - 부산광역시 강서구 신호동
최초 설립지 진영학교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지도보기

[정의]

개항기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설립된 근대 교육 기관.

[개설]

개항 이후 외세의 침탈이 거세지고, 일본이 러일전쟁의 승리를 빌미로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진행하자, 이에 대한 저항의 차원에서 이른바 애국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애국 계몽 운동은 실력 양성과 국권 회복을 목표로 하였으며, 실력 양성과 관련하여서는 근대적 교육 운동이 전개되었다. 근대 학교 설립은 근대적 교육 운동의 한 방편이었다.

김해 지역에서도 실력 양성과 국권 회복을 위한 조직이 갖추어졌으며, 여기에 지역 유지와 지역민들의 노력이 더하여져 다수의 근대 학교가 설립되었다. 김해 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된 근대 학교는 1898년 개교한 사립 육영학교[현 김해동광초등학교]이다. 근대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지역민과 교육자들이 협력하여 설립하였으며, 1906년 9월에 공립 김해보통학교로 인가받았다.

1908년 1월에는 경남지계위원을 역임하고 대한자강회 김해지회 회원이었던 노상기가 생림면 봉림리 자기 소유 땅 1,521㎡와 교사 15칸을 기부하여 조양의숙(朝陽義塾)을 설립하였다. 조양의숙은 청년 교육을 위해 설립되었는데, 한문 교사[천영훈]와 일어 교사[片桐文淸]를 두어 전통과 근대를 결합하고자 하였다. 설립 당시 학생은 59명이었다.

한편, 김해 지역에서 가장 교세가 큰 근대 학교는 명지면[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에 설립된 동명학교(東鳴學校)였다. 설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은데, 1908년 11월 지역 기독교인들을 주축으로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9년 11월 당시 학생이 1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는데, 학생 중에 한문에 능통한 자도 많아 기존 유림층도 다녔음을 알 수 있다. 동명학교는 십여 명의 교사 자격이 있는 선생들이 학교를 운영하는 한편, 학교 주위 12개 마을에 복습소를 설치하고 야학과도 운영하였다. 3·1운동 때는 동명학교의 선생과 학생들이 명지 지역 만세 시위를 이끌기도 하였다.

1909년 4월 10일에는 김해교회 설립자인 배성두와 미국인 선교사 스미스(W. E. Smith)[한국명 심익순]가 함영학교와 유일학교를 통합하여 합성학교(合成學校)[현 김해합성초등학교]의 정식 인가를 받아내었다. 합성학교는 김해면 북내동[현 경상남도 김해시 서상동]에 교사를 신축하고, 4년제 고등과와 4년제 보통과를 설치하였다. 김해교회 등 기독교인들의 출연으로 운영되었다. 1910년 당시 학교 규모는 김해 지역 근대 학교 중 가장 작은 규모로 직원 4명, 학생 20명이었다. 처음 교장은 스미스가 맡았지만, 순회 선교사였기 때문에 이후 배성두가 이어받았다. 1916년 이후에는 배순서, 김성철 등이 교장으로 취임하여 학교를 운영하였다.

김해 지역에는 그 밖에도 다양한 근대 학교가 설립되었다. 1907년에는 상동면에 조의승이 광흥학교(光興學校)를 설립하였고, 1908년에는 좌부면 유지들이 농무기술학교를 세웠는데 학생이 60여 명에 이르렀다. 또한 1908년 6월에는 읍내 유지들이 좌부면의 공유 재산과 서재계의 기금을 이용하여 부원동에 향명학교(向明學校)를 설립하였는데, 학생 수는 50여 명이었다. 1908년 11월에는 ‘계명학교(溪明學校) 설립 발기회’가 구성되어 의연금 모집에 나서기도 하였다.

1910년 3월에는 하계면[현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동어리에 동내 유지들이 일어학교 설립을 발기하였으며, 4월에는 명지면 신호리[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신호동]에서 부산 경제계의 거두인 이규직과 일본인 후쿠다[福田增兵衛] 등이 신명학교(新鳴學校)를 설립하였다. 6월에는 하계면에서 김성윤이 재원을 기부하여 진영학교가 개교하였다. 이처럼 김해 지역에서는 읍내를 중심으로 하계면, 상동면, 명지면, 생림면 등 전 지역에서 근대 학교 설립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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