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민주화운동협의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402
한자 金海民主化運動協議會
이칭/별칭 김해자주평화통일연대,김해진보연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91년 3월연표보기 - 김해민주화운동협의회 설립
성격 민주화 운동 단체

[정의]

1991년 경상남도 김해시에 설립된 민주화 운동 단체.

[개설]

김해 지역은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 지주에 대한 소작 쟁의가 활발하였고, 해방 공간기에는 좌우익 할 것 없이 자주적 통일 민족 국가 수립에 매진하였으며, 1960년에는 반독재 투쟁이 가열차게 일어난, 민족 민주 운동의 실체적 경험을 담지한 고장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1970년 박정희 정권, 1980년대 전반 전두환 통치기에 잠복하였다가 1987년 6월항쟁을 계기로 다시 소생하였다. 호헌 철폐와 직선제 개헌과 같은 당시의 실천적 당위적 목표가 관철되어 제도적 절차적 민주주의가 현실화하고 있었지만, 양 김의 분열에 따른 노태우 정권의 성립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현실화를 넘어 체내화에 이르는 데 다소 간의 제약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상황 아래, 1990년에 들어와 김해 지역 민족 민주 운동 단체들 사이에 그간의 공동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연대 논의가 일어났는데, 그 결과물이 1991년 3월 7일 창립한 김해민주화운동협의회이다. 김해민주화운동협의회의 창립은 그동안의 분산적 개별적 대응을 지양하고, 연대를 통한 자주 민주 통일 운동을 확산시켜 지역 사회의 민주화를 넘어 국가적 단계까지 기여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초대 의장은 만장일치로 천익출이 추대되었다.

[변천]

김해민주화운동협의회는 2003년 11월 김해자주평화통일연대, 2005년 11월 김해진보연대로 계승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김해민주화운동협의회는 1991년 4월에 발생한 백골단에 의한 명지대학교 학생 강경대의 죽음을 규탄하는 군민대회를 5월 9일 민주자유당 창당일에 맞추어 개최하였다. 공설운동장에 시민 100여 명과 학생 300여 명이 참석하여 부원동에 있던 민주자유당사까지 행진을 하고 자진 해산하였다. 1991년 5월 25일 왕릉공원 앞 광장에서 제2차 시·군민대회를 개최하였는데 5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김해시 내 간선 도로를 따라 행진하였다.

[의의와 평가]

김해민주화운동협의회는 민주주의의 하방화에 실제로 기여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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