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인민위원회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403
한자 金海人民委員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창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 10월 6일연표보기 - 김해인민위원회 설립
성격 민간 자치 기구

[정의]

1945년 9월 조선인민공화국 수립과 발맞추어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조직된 민간 자치 기구.

[변천]

인천항을 통해 한반도에 미군이 진주하기 이틀 전인 1945년 9월 6일, 여운형을 밀어내고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장악한 좌익 세력은 재빨리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해소하고 정부 형태의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하였다. 이는 향후 미국과의 정치적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었고 할 수 있다. 중앙에서 조선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지방 각지의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지부가 인민위원회로 전환되기 시작하였고, 김해 역시 이러한 전환 경로를 밟았다. 1945년 10월 5일 조선인민공화국 경상남도 인민위원회가 탄생하였고, 10월 6일 노재갑이 김해군 인민위원회장으로 선출되면서 김해인민위원회의 출발을 공식화하였다. 신탁통치 파동, 미군정의 사회·경제 정책 혼란, 단선 단정 정국 등 38도선 이남의 정치가 요동치면서 인민위원회는 미군정과 극한으로 대립하는 동시에 우익 세력에게 탄압받아 세가 급속히 꺾였다. 김해인민위원회도 이러한 역사적 추세를 빗겨서지 못하고 쇠퇴하였다.

[의의와 평가]

김해인민위원회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김해지부를 발전적으로 계승한 민간 자치 조직이었다. 조직 구성의 주역은 다름 아닌 김해 지역 전 계층 및 계급이었다. 따라서 김해인민위원회는 당시 직면한 우리 민족의 최대 과제였던 친일파 제거 및 식민지 지주제 철폐와 토지 개혁을 골자로 한 식민지 경제 유산의 해체를 위해 진력하였다. 하지만 38도선 이남에 미국식 자본주의를 이식하려고 하였던 미국의 정치적 판단과 함께 단선 단정으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하였던 친일파 및 극우 세력의 탄압으로 말미암아 인민위원회의 활동은 분쇄되고 조직은 와해되었다. 그럼에도 신국가를 주체적으로 이룩하려고 하였던 김해 지역민의 열망을 아래로부터 담아낸 자발적 조직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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