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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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進永地區 農民組合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하지영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진영 지역에 있었던 농민 단체.
[설립 목적]
3·1운동 이후 민족적, 계급적 각성을 이룬 농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단체를 결성하여 지주 및 식민지 권력에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김해 진영 지역 농민들도 지역 내 농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저항 운동을 지도하고자 농민 단체를 조직하였다.
[변천]
진영 지역 농민 단체로 처음 확인되는 것은 1923년 이전 설립된 진영노동공제회이다. 당시 조선의 농민 단체는 서울 지역 사상 단체 활동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김해에서는 읍내 지역[북성회계]과 진영 지역[서울청년회계]으로 분리되어 조직되었다. 진영노동공제회는 1924년 1월 무렵 진주에서 열린 북성회 주도의 경남노농운동자간친회에 대표단을 파견하였으며, 서울청년회계가 주도한 조선노농대회발기단체총회에 참가 결의를 하였다. 진영노동공제회는 이후 진영노농회로 명의를 바꾸었다가, 1924년 6월경 진영소작인회와 진영노동회로 분화되었다.
1926년 이후 진영소작인회의 활동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931년 열린 ‘김해농민조합 창립총회’에 진영소작인회에서 활동한 배재황(裵在晃), 황찬숙(黃贊淑) 등이 참석한 것으로 보아 김해농민조합을 통해 농민 운동을 이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진영소작인회는 소작농의 일상적인 이익을 옹호하면서 조직을 확대하여 나갔다. 1925년 수해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소작민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소작쟁의를 일으켰는데, 소작료 인하, 수해 조사, 구속 회원 가족 지원 등의 문제를 총회에서 논의하였다. 1925년 6월에는 근진영소작인대회(近進永小作人大會)를 개최하여 마을마다 소작인 단체를 설립하기로 하였으며, 9월에는 일대 최대 농장인 무라이농장[村井農場]에서 소작인대회를 개최하였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김해 지역의 사회 운동, 곧 청년 운동과 농민·노동 운동 등은 읍내 지역과 진영 지역이 분리되어 전개되었다. 진영 지구 농민 단체의 구성원과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진영 지역 농민들의 저항 운동뿐만 아니라, 읍내 지역과 구분되는 진영 지구만의 지역성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