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469
한자 酊翁先生文集
영어공식명칭 Jeongongseonseang-munjip
이칭/별칭 『정옹집』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구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09년연표보기 - 『정옹선생문집』 간행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도서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1997[서부리 220]
성격 문집
저자 조구령
간행자 조창순
권책 4권 2책
행자 10행 18자
규격 30.0×20.7㎝|19.3×15.5㎝[반곽]
어미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

[정의]

1909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 유학자 조구령의 문집.

[저자]

조구령(曺九齡)[1657~1719]의 자는 인수(仁叟)이고, 호는 정옹(酊翁)·안인당(安仁堂)이다. 김해 활천(活川)의 지내리(池內里)에서 조이로(曺爾櫓)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 초기 태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를 역임한 조유인(曺由仁)의 10세손이다. 외할아버지는 밀양 박씨 사인 박홍정(朴弘禎)이다. 1685년 남악서당(南嶽書堂)으로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을 찾아가 학문의 요체에 대해 물은 이후, 여러 차례 직접 찾아가거나 편지를 통해 질의하였다고 한다. 1689년에는 재종숙인 사우당(四友堂) 조이추(曺爾樞)와 『대학』을 강론하였고, 1690년부터 6~7년 동안 신산서원에서 선비들과 함께 강학하였다. 1691년에는 산해정에 사림을 모아서 「심학도설(心學圖說)」을 강론하기도 하였다.

1694년 스승 이현일이 유배될 때에 파주까지 가서 서신을 보내고 돌아왔다. 1698년 신산서원의 주석(主席)으로 제생을 모아서 남명 조식의 유사(遺事)와 언행록을 강론하고,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를 강론하였다. 1700년에는 영산의 경락정(景洛亭)에서 이현일을 만나고, 권두경(權斗經)·권두기(權斗紀)·이재(李栽)·신몽삼(辛夢參) 등과 교유하였다. 1702년 무렵 『분성여지승람』을 보완하는 데 참여하였다. 1707년에는 정옹정(酊翁亭)을 건축하여 편액을 달았다.

[편찬/간행 경위]

1909년 겨울에 이만도(李晩燾)가 쓴 문집 서문과 이수악(李壽岳)이 쓴 발문에 의하면, 저자의 유고는 화재를 만나 크게 소실된 이후 그 나머지를 보관하고 있다가, 다시 발굴된 유고를 보완하여 후손 조창순(曺昌淳)의 주도로 간행되었다고 한다. 이만도는 오랜 기간 『정옹선생문집(酊翁先生文集)』이 정식으로 간행되지 못한 이유를 “연원(淵源)에 관계되는 바가 있어 시의(時義)를 참작하고자 기다리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옹집(酊翁集)』이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4권 2책의 목판본이다.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며,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크기는 30.0×20.7㎝, 반곽(半郭)의 크기는 19.3×15.5㎝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18자이다.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한국국학진흥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문집의 첫머리에는 1909년 이만도가 지은 서문이 있다. 권1에는 90여 편의 시(詩)가, 권2에는 편지·제문·축문·비문 등이 있고, 권3과 권4에는 부록으로 저자 집안의 계보도, 저자의 연보와 행장 등의 각종 전기 자료, 만사·제문 등 저자를 추모하는 글이 실려 있다. 문집 말미의 발문은 저자의 스승 이현일의 후손 이수악(李壽岳)이 썼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