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산성지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481
한자 盆山山城地圖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배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872년연표보기 - 「분산산성지도」 제작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고지도

[정의]

1872년 지방 지도에 수록된 경상남도 김해 분산산성의 지도.

[개설]

분산산성(盆山山城)은 통상 ‘분산성’으로도 불리는 성으로, 가야 시대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동안 방치되다가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일부 보수되었으며, 다시 무너진 것을 1871년 김해도호부사 정현석(鄭顯奭)의 주도로 개축되었다.

[제작 발급 경위]

병인양요·신미양요 등 서구 열강의 침입이 잇따르는 가운데,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이 전국 각 군현에 명령을 내려 제작한 459매의 지방 지도 가운데 하나이다. 「분산산성지도(盆山山城地圖)」는 당시 김해 지역의 실정과 해양 방위와 관련된 각종 시설을 효과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형태]

필사 채색본의 낱장 지도로, 크기는 가로 35㎝, 세로 25㎝이다.

[구성/내용]

지도의 중앙에 분산산성이 차지하고 있다. 서남쪽으로 김해부성(金海府城)을 그려 유사시 읍치 수호의 기능을 표현하였다. 중심 성곽에는 진아(鎭衙)·동문·서문·북문·남암문(南暗門)·봉수대·군기고·화약고, 그 외 창고와 우물 및 연못 등의 위치를 상세히 표시하였다. 산성 남쪽으로는 타고봉(打鼓峯)이 표시되었는데, 북을 매달아 유사시 위기를 알리는 곳이다. 산성 남쪽 해안 지대에는 주요 해양 방위 시설이 설치된 죽도(竹島)와 수군·군기(軍器)·해창 등이 표시되었다. 또한 분산산성과 연계된 주변의 군사 시설도 포함하고 있는데, 동쪽으로 동래부 금정산성, 서남으로 다대진(多大鎭)과 가덕진(加德鎭) 등이 표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1872년 지방 지도는 짧은 기간에 제작되어 형식이 전국적으로 통일되지 않는 등 한계도 지적된다. 그러나 「분산산성지도」분산산성이 개축된 직후에 작성된 지도라는 점, 그리고 이전의 지도보다 비교적 큰 규격으로 제작되어 그 내용이 상세하고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점 등 개항 전후 김해 지역 해양 방위의 실태를 알려 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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