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수가리 조개더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535
한자 金海 水佳里 -
영어공식명칭 Suga-ri Shell Mound in Gimhae
이칭/별칭 부산 범방동 가동 패총,김해 수가리 패총,수가리 조개더미,수가리 패총,범방동 가동 조개더미,범방동 패총,범방동 조개더미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물 산포지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 1543|범방동 1581|범방동 1605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양화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8년 6월 9일~1978년 8월 16일 -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1978]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9년 3월 5일~1979년 5월 1일 -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실시[1979]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0년 2월 25일연표보기 -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에서 범방동 가동 조개더미로 명칭 변경
소재지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 -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 1543|1581|1605
성격 조개더미
면적 2,470㎡[발굴 조사 면적]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에 있는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

[개설]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 발굴 당시의 행정 구역상 소재지는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수가리 234번지였는데, 부산경남경마공원 조성으로 인해 행정 구역 변경이 변경되어 2000년 2월 25일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이에 따라 유적의 명칭이 ‘범방동 가동 조개더미’로 변경되었으나, 이미 ‘수가리 조개더미’라는 명칭이 정착되었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위치]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범방동 1543번지와 범방동 1581번지, 범방동 1605번지에 걸쳐 자리하고 있다. 금병산[242.6m]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비탈 말단부에 위치한다. 북쪽으로 서낙동강(西洛東江)의 지류인 조만강(潮滿江)이 관류하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유적의 전방에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또 유적은 해역이 확대되어 고 김해만(古 金海灣)이 형성되었던 시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는 독립 구릉을 제외하고는 거의 해수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조개더미 유적은 독립 구릉인 금병산의 말단부에 위치하였다. 독립 구릉의 반대편인 남쪽에는 동 시기에 해당하는 부산 범방동 신석기 유적과 범방동 패총(凡方洞 貝塚)[부산광역시 기념물]이 있고, 북서쪽의 말단부에는 수가리 본동 조개더미가 분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는 부산~마산 간 고속 도로 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1978년 6월 9일~동년 8월 16일과 1979년 3월 5일~같은 해 5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부산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면적은 2,470㎡로, 신석기 시대의 조개더미 5개 지구와 화덕 자리[노지], 삼한 시대의 조개더미 1개 지구 등을 확인하였다.

[형태]

5개의 패각층이 지표에 드러나 있는 상태이며, 가장 동쪽에 있는 1구에서 서쪽으로 차례로 2구, 3구, 4구, 5구가 분포한다. 패각층은 대체로 해발 7m를 전후한 5m~10m에 형성되어 있다. 1구 조개더미에서 3개 층을 확인하였는데, 조성 시기는 신석기 중기에서 신석기 말기의 시간 폭을 가진다. 또 전형적인 한정 행위 장소의 기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신석기 토기 12점과 석기 1점이 출토되어 신석기 말기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2구 조개더미는 3개 지점에 분포하였는데, 잔존 깊이는 0.5m~1m이며 4개 층을 확인하였다. 유물은 신석기 토기 34점과 석기 20점이 출토되었다. 조성 시기는 신석기 중기에서 신석기 말기이며,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 형성 시기의 실마리 제공하였다. 3구 조개더미는 가장 양호한 잔존 상태를 보이는데, 잔존 깊이는 2.5m이며, 6개 층을 확인하였다. 유물은 선별한 토기 490점이 출토되었다. 문양 분석을 통해 토기의 편년을 알 수 있어 ‘수가리 Ⅰ기층’, ‘수가리 Ⅱ기층‘, ‘수가리 Ⅲ기층’의 설정에 대한 타당성을 확인하였다. 조성 시기는 신석기 중기~신석기 말기에 해당한다.

4구 조개더미는 전체 패각층 중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하며, 4개 층을 확인하였다. 생활면에 화덕 자리도 있었는데, 무시설식 화덕 자리에서 두께 20㎝~25㎝의 소토 흔적이 보였다. 선별한 유물 27점이 확인되어 토기의 출토량은 적지만 문양 구성에 있어 일정한 변화를 엿볼 수 있고, 숫돌과 돌칼, 돌 화살촉 등의 다양한 석기도 출토되었다. 조성 시기는 신석기 말기에 해당한다. 5구 조개더미에서는 5개 층을 확인하였다. 층 내에서 목탄이나 소토층이 보여 패각층이 형성되는 중에 인간 활동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물은 신석기 시대의 토기 17점, 석기 10점과 삼한 시대의 토기 49점, 철기 9점, 석기 1점이 출토되어, 신석기 중기에 형성되었다가 일정 시기 중단된 뒤 삼한 시대에 다시 형성된 패각층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

신석기 시대의 유물은 빗살무늬 토기[즐문 토기] 570점과 가락바퀴[방추차], 토우 등 토제품 7점, 갈돌[석봉], 갈판[연석], 숯돌[지석], 돌도끼[석부] 등 석기 53점, 그리고 조개 팔찌[패천] 11점과 골제(骨製) 자돌구(刺突具) 17점이 출토되었다. 빗살무늬 토기는 빗금무늬[단사선문(短斜線文)], 겹아가리[이중 구연(二重 口緣)], 능형 집선문(菱形 集線文), 연속 호선문[지자문(之子文)], 횡주 어골문(橫走 魚骨文), 집선문(集線文), 사격자문(斜格子文), 톱니무늬[거치문(鋸齒文)], 제형 집선문(梯形 集線文) 등 다양한 문양이 시문되어 있고, 무문양 토기가 출토되어 토기의 문양 분석을 통해 편년을 알 수 있다. 삼한 시대의 유물은 토기 49점과 손칼[도자], 쇠 화살촉, 쇠낫[철겸] 등의 철기 9점, 그리고 석기 1점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연질의 옹형 토기, 발형 토기, 호형 토기, 덧띠 토기[점토대 토기], 꼰두드림 무늬 짧은 목 항아리[승석문 타날 단경호]와 굽다리 접시[고배] 조각도 출토되었으나, 신석기 시대 토기에 비하여 기형이나 기종은 다양하지 않다.

[현황]

김해 수가리 조개더미 자리에는 현재 부산~마산 간 고속 도로가 개통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유적에 대한 층위별 유물 분석을 통해 수가리식 토기의 단계를 설정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시기 구분이 가능해져 신석기 시대 편년 체계를 설정할 수 있었다. 또한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와 비교 검토하여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 시대 기본 토기 편년망을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더불어 조개더미에서 패각 마모층을 확인하고, 이를 해변 형성과 관련지어 신석기 시대 해수면 변동 등 고지형 복원에 기초 자료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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