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546
한자 金海 可南亭
영어공식명칭 Ganamjeung in Gimhae
이칭/별칭 가남정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금곡로182번길 143-10[금곡리 619]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순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1년연표보기 - 김해 가남정 건립
현 소재지 김해 가남정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금곡로182번길 143-10[금곡리 619]지도보기
성격 정자
양식 홑처마 팔작지붕|장여 수장집
정면 칸수 4칸[정당]|3칸[대문채]
측면 칸수 1.5칸[정당]|1칸[대문채]
소유자 광주 노씨 문중
관리자 광주 노씨 문중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금곡리에 건립한 정자.

[개설]

조선 후기 유학자 금곡(噤谷) 노문필(盧文弼)[1650~1714]은 현 금곡마을[쇠실마을]에 입향하여, 흙을 쌓아 단을 만들고 나무를 식재하는 등 조경 시설을 갖추어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노문필과 교류하는 창설(蒼雪) 권두경(權斗經)[1654~1725]과 일암(一庵) 신몽참(辛夢參)[1648~1711], 정옹(酊翁) 조구령(曺九齡)[1657~1719]이 이를 두고 ‘가남정(可南亭)’이라고 하였다. 노문필은 학문이 뛰어나 신산서원(新山書院) 원장을 지냈으며, 김해 지역의 지방지인 『분성여지승람신증초(盆城輿地勝覽新增抄)』[1699] 발간에 참여하였다.

[위치]

김해 가남정(金海 可南亭)김해시 한림면 금곡리 619번지에 있다. 금곡마을회관에서 금곡로182번길을 따라 동쪽으로 약 50m 가다가, 우회전해서 약 44m 가면 동쪽에 김해 가남정이 보인다. 안정골과 쇠실골에서 발원한 금곡천이 합류하는 부분에 있으며, 금곡마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지형은 평탄하고 좌향은 서남향이다.

[변천]

최초의 가남정은 건물 없이 토단을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100년이 흐른 뒤 후손들이 계를 조직하여 1921년에 정자를 지었다. 창건 기록은 대청 상부 종도리 장여 하부 상량문 ‘신유 11월 14일 기시에 기둥을 세우고 같은 달 17일 기시에 처마 끝머리를 올렸다[辛酉十一月十四日己時堅柱仝月十七日己時上樑]’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형태]

정당과 대문채가 남북 축선상에 ‘二’ 자형으로 서남향하여 배치되어 있으며, 담장을 둘러 공간을 구획하였다. 정당은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중앙의 대청 2칸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이 1칸씩 있다. 대청과 온돌방 사이에는 4분합 들문을 달아 공간을 유기적으로 활용하도록 하였다. 대청의 배면에는 판벽을 설치하고 판문을 달았으며, 대청 후면에는 쪽마루를 달아 놓았다. 기단은 모르타르로 마감하였으며, 초석은 덤벙 주초를 사용하였다. 기둥은 둥근기둥과 네모진 기둥을 사용하였는데 정면에만 둥근기둥을 사용하였다. 건축 형식은 장여(長欐)로 장식한 장여 수장집이며, 도리는 정면에만 원형의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나머지는 사각형의 납도리를 채용한 특징이 있다. 상부 가구는 도리가 3개인 3량가이다. 지붕은 한식 기와로 암막새와 수막새를 사용하였다.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솟을대문이다. 중앙 칸에 대문을 설치하고, 동쪽 칸에는 창고와 화장실을 두었으며, 서쪽 칸에 온돌방을 두었다.

[현황]

현재 김해 가남정은 마을 중앙에 있으며, 특정 기념일에만 사용하고 있다. 소유자 및 관리자는 광주 노씨 문중이다.

[의의와 평가]

김해 가남정은 마을의 중심에 위치하여 경관이 우수하지는 않고, 또한 원림 시설도 부가되어 있지 않다. 평면의 구성 및 대문채의 배치와 형태를 보면 정자의 기능보다는 문중 행사를 위한 재실에 가깝다. 건축물의 특징보다는 김해 지역의 유학자 노문필을 기리는 데 의의가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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