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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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微陽書院 |
이칭/별칭 | 김해 미양서원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진영로 430-16[신용리 산61-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현진 |
건립 시기/일시 | 1832년 - 미양서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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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미양서원 훼철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0년 - 미양서원 복원 |
현 소재지 | 미양서원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진영로 430-16[신용리 산61-4] |
성격 | 서원 |
양식 | 팔작지붕|목조 기와 |
정면 칸수 | 5칸[강당]|3칸[미양사]|3칸[망미재]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신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개설]
미양서원(薇陽書院)의 사당 미양사(薇陽祠)에는 조선 전기 문신인 김계금(金係錦)[1405~1493]이 모셔져 있다. 김계금의 호는 육일거사(六一居士)·서강(西岡)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1455년(단종 3)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기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며 단종에게 충절을 지켰다.
[위치]
미양서원은 김해시 진영읍 신용리 산61-4번지에 있다. 서원이 있는 자리는 궐현재(蕨峴齋)의 옛터이다.
[변천]
1803년(순조 3) 김해 지역의 유림들이 순찰사에게 서원의 창건을 진정하였고, 1828년(순조 28)에는 영남의 사림이 예조(禮曹)에 서원의 건립을 건의하였다. 그리하여 1832년(순조 32) 퇴은동에서 멀지 않은 오계천(烏溪川)가 수조리(水助里)에 미양서원을 건립하게 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으며, 빈터에는 김계금의 후손 김종대(金種大)가 1928년에 쓴 유허비만 남아 있었다. 1965년 후손과 유림의 요청으로 김계금은 충청남도 공주시 동학사(東鶴寺) 숙모전(肅慕殿)에 합향되었다. 이후 1990년 후손과 유림이 김계금의 묘소가 있는 김해시 진영읍 신용리의 현재 위치에 미양서원을 복원하였다.
[형태]
입구에 미양서원 복원 사적비가 있고, 외삼문인 불이문(不貳門)이 있다. 내부에는 미양서원과 내삼문인 망미문(望美門), 사당인 미양사 및 김계금의 책판을 보관하는 망미재(望薇齋)가 배치되어 있다. 불이문은 솟을대문 형식이고, 강당은 정면 5칸의 팔작지붕 목조 기와 건물이다. 망미문은 삼문의 팔작지붕이고, 미양사와 망미재는 각각 정면 3칸이다.
[현황]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망미재에는 후손들이 김계금의 언행과 업적, 관련 기록 등을 모아 1850년(철종 1)에 제작한 김계금 서강일고 목판(金係錦 西岡逸稿 木板) 총 26장이 보관되어 있다. 김계금 서강일고 목판은 2000년 1월 25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에서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미양서원은 조선 전기 단종 때의 절의지사(節義之士)였던 김계금을 배향한 곳으로, 조선 후기 김해 지역을 비롯한 영남 유림의 선현 추숭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