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5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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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長方里- |
영어공식명칭 | Gimgae Jangbang-ri Reed-Roofed House |
이칭/별칭 | 장방리새집,장방리억재집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한림로343번길 47-158[장방리 279-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순강 |
건립 시기/일시 | 1920년 - 김해장방리갈대집 사랑채와 아래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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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945년 - 김해장방리갈대집 안채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7년 3월 15일 - 김해장방리갈대집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21호 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8년 - 김해장방리갈대집 사랑채 개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해장방리갈대집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재지 | 김해장방리갈대집 -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한림로343번길 47-158[장방리 279-1] |
성격 | 전통 가옥 |
양식 | 목조 갈대집 |
정면 칸수 | 3칸[안채]|3칸[사랑채]|3칸[아래채] |
측면 칸수 | 1.5칸[안채]|1.5칸[사랑채]|1.5칸[아래채] |
소유자 | 송삼복 |
관리자 | 송삼복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가옥.
[개설]
김해장방리갈대집은 지붕의 마감 재료로 갈대를 사용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건립 시기는 지적원도[1913년 제작]에서 확인되지 않고 1948년 항공 사진에서 확인되어 이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김해시공식블로그에서는 사랑채와 아래채는 1920년에 건립되었으며, 안채는 1945년에 건립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초가집은 종종 볼 수 있으나 갈대집은 영남에서는 창녕의 하병수 가옥[창녕 진양 하씨 고택]의 안채 말고는 흔히 볼 수 없는 집이다. 갈대집을 김해 지역에서는 새풀집 또는 새집[억새집]으로 부르고 있으며 낙동강 변에 흔히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위치]
김해장방리갈대집은 영강사(永江寺) 경내에 자리 잡고 있다. 한림로와 한림로343번길을 만나는 삼거리에서 한림로343번길을 따라 서쪽으로 약 1.23㎞를 진입하면 김해장방리갈대집에 이른다. 화포천의 하류 좌안에 위치하는데, 작은 구릉의 남사면부 끝단에 자리하고 있다. 지형은 경사가 매우 급한 편이며, 이를 계단상으로 정지하여 건물을 세웠다. 남향을 하고 있으며, 화포천의 홍수 범람을 피해 현재의 높은 곳에 건립한 것을 알 수 있다.
[변천]
안채는 청주 송씨 정자로 사용하다가 1970년대 초 무렵에 영강사가 건립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김해장방리갈대집은 2007년 3월 15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21호로 지정되었다. 2008년에 사랑채 지붕 해체 보수 공사가 있었고 2021년 주차장에 영강사의 부속 암자 2동을 건립하였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는 삭제되었다.
[형태]
안채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갈대집으로 현재 ‘영강정(永江亭)’이라는 편액이 달려 있다. 실의 구성은 최근 영강사 주지승의 요사로 사용되면서 많이 변형되어 있다. 평면을 복원해 보면 중앙에 마루를 두고 좌우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을 배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은 자연석을 2~3벌대 허튼층으로 쌓았으며, 상부는 강회다짐으로 마감되어 있다. 초석은 자연석 그대로인 덤벙주초를 이용하였으며, 기둥은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다. 건축 양식은 과거 툇마루 상부에만 소로를 장식한 장여수장집이며 나머지 면은 장여로만 장식한 장여수장집이다. 도리는 둥근 납도리를 사용하였으며, 상부 가구는 도리가 3개인 3량가(三樑架)이다. 지붕은 갈대로 엮은 초가이다.
사랑채는 안채의 동남쪽 모로 배치되었는데,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갈대집이다. 실의 구성은 좌측부터 광[창고] 1칸, 툇마루가 온돌방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은 자연석을 외벌대로 쌓은 다음 기단 윗면은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되어 있다. 기둥은 사각 기둥을 사용하였는데, 일부는 벌목한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여 기둥이 매우 빈약한 편이다. 기둥 상부에 도리를 바로 올렸으며, 도리의 형태는 네모난 납도리이다. 상부 가구는 도리가 3개인 3량가이다.
아래채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갈대집이다. 기단은 자연석으로 외벌대 허튼층으로 쌓았으며, 상부는 강회다짐으로 마감되어 있다. 초석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덤벙주초이며, 기둥은 벌채한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기둥이 휘어진 특징이 있다. 기둥 상부에는 장여 없이 바로 도리를 올렸으며, 도리도 벌목한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상부 가구는 도리가 3개인 3량가이며 지붕은 갈대집으로 초가이다.
[현황]
김해장방리갈대집의 배치는 안채·사랑채·아래채가 능선을 따라 축을 달리하며 배치되어 있다. 배치는 안채가 남향을 하고 있고, 사랑채는 서향하고 있다. 그리고 아래채는 남향을 하고 있어 전체적인 배치는 크랭크 형태이다. 현재 김해장방리갈대집의 후면에는 영강사 대웅전이 위치해 있으며, 정면 낮은 곳에는 관리사가 위치해 있다. 그리고 경전선 고속철도가 남쪽에 인접하여 위치하여 소음과 진동이 전해질 정도이다. 한편 화포천이 한눈에 조망되어 경관이 우수한 곳이다.
[의의와 평가]
김해장방리갈대집은 낙동강 변의 갈대를 이용하여 건립한 집으로 과거에는 인근에서 흔히 이용하고 볼 수 있는 가옥이었다.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의 ‘초막골’이라는 마을 이름이 이를 대변한다. 하지만 현재는 주거 문화의 발달로 갈대집은 거의 멸실된 상태이다. 김해장방리갈대집은 비록 근대기에 건립되었지만 비교적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또한 낙동강의 홍수 범람을 피해 높은 곳에 지은 것을 보면 과거 홍수 범람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되는 집이다. 김해장방리갈대집은 근대 민가 연구를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