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8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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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運動 |
영어공식명칭 | Saemaul Movement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섭 |
[정의]
1970년에 박정희 정부가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추진한 국가 주도형 농촌 근대화 사업.
[개설]
김해 지역에 위로부터의 농촌 근대화 운동, 곧 농촌 새마을운동이 착수된 직접적 배경은 1970년 10월부터 1971년 5월까지 진행된 새마을 가꾸기 사업의 성과 때문이었다. 새마을 가꾸기 사업은 전국의 3만 3000여 마을마다 시멘트 335포대를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것이었다. 사업 종료 후 정부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전국 농촌 마을 중에 약 50%에 이르는 1만 6600여 마을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확인되었다. 많은 마을에서 시멘트를 기본으로 하여 마을 환경 개선 사업에 진력하여 마을의 외형적 일신을 일구어 낸 것이었다. 기대 이상의 실적에 고무된 박정희 정부는 농촌 소득 증대 사업을 신설하여 마을 외형 가꾸기에 초점을 둔 새마을 가꾸기 사업에 포괄시키는 새로운 농촌 개발 정책을 구상하여 실시하였으며, 농촌 새마을운동으로 확대하여 발전하였다.
[1970년대 김해 지역 새마을운동 사례]
김해 지역 새마을운동의 사례는 먼저 진영읍 공정마을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1972년에 정부에서 시멘트 335자루와 철근 1톤을 보내자 마을 주민들은 마을 총회에서 농노 개설에 활용하기로 결의하고, 청년회를 주축으로 현장 작업을 하였다. 농로가 반듯하게 완성되자 1973년 3월 초부터 지붕 개량 사업과 담장 개량 사업이 착수되었다. 담장 개량을 위해 정부에서 100만 원을 지원하였지만, 지붕 개량 사업은 마을 주민들이 자력으로 완성하였다. 공정마을 새마을운동에서는 새마을운동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소득 증대 사업은 하지 않았으며, 1973년에서 1983년까지 추진한 총 19개의 새마을사업 중 소득 증대와 연관된 사업이 단 한 건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된다.
진영읍 의전리에 있는 등리마을은 환경 개선 사업과 아울러 소득 증대 사업까지 진행된 마을이다. 환경 개선 사업으로는 수리 시설, 마을 창고, 마을 회관 건설이 있으며, 마을 창고와 마을 회관은 마을 주민의 자체 비용으로 충당되었다. 그 결과 등리마을은 최우수 새마을로 선정되어 군내 자립 마을로 우뚝 설 수 있었다. 1974년부터 소득 증대 사업이 추진되었으며 양묘 사업, 치어 입식, 밤나무 조성 사업 등이 있었다. 치어 입식은 주민 자체 부담금 150여만 원, 밤나무 조성 사업은 주민 부담 250만 원과 정부 지원금 100만 원이 소요되었다.
대동면 수안마을 역시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의 자취가 비교적 뚜렷한 마을이다. 먼저 지붕 개량 사업이 추진되었는데, 남해안고속도로 주변 지붕 개량과 함께 수안마을이 1974년 자립 마을 지붕 개량 시범 부락에 선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부 국고 융자금과 보조금이 사업 자금으로 활용되어 총 66동에 대한 지붕 개량 사업이 진행되었다. 수안마을의 대표적인 소득 증대 사업은 육성우 사업이었다. 지붕 개량 사업의 성과에 따라 소득 증대 육성우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었고, 한 가구당 1마리 규모에 10만 원 상당의 융자금이 지원되었다. 농지가 부족한 마을 환경 속에서 마을 공동체 활동을 통한 육성우 사업 추진은 수안마을 주민의 농가 경제 향상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되었다.
김해 지역 새마을운동은 마을의 내적 기반과 외부적 지원 등 여러 요인이 맞물리면서 환경 개선에 치중한 마을, 환경 개선과 아울러 소득 증대에도 박차를 가한 마을 등으로 나누어졌다. 각 마을 새마을운동의 전개와 양상, 특징 등은 김해 지역 현대사의 지울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