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향 성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595
한자 貫鄕 姓氏
영어공식명칭 Clan seat of family name which originated Gimhae area
이칭/별칭 토성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광철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 집단.

[개설]

2000년 통계청에서 실시한 성씨 본관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당시 김해시를 관향으로 하는 성씨는 김해 김씨(金海 金氏)를 비롯하여 49개 성씨가 있었다. 이 가운데 전국적으로 1,000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김해 관향 성씨도 김씨 등 23개나 된다. 김해 나씨(金海 羅氏)와 김해 모씨(金海 毛氏)를 제외하면 대부분 김해 지역에 거주하고 있지만, 인구수를 보면 김(金)·허(許)·배(裵)·송(宋)·강(姜)·이(李)를 제외하면 모두 50명 미만이다.

김해 지역의 관향 성씨를 알려 주는 최초의 기록은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1425]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성씨조의 토성(土姓) 관련 기록이다. 여기에 김해 지역 토성으로 김·허·배·송·손(孫)·유(庾) 등 6개 성씨가 소개되어 있다. 이들 성씨가 조선 전기 김해 지역의 관향 성씨이며, 조선 후기까지 큰 변동은 없다. 그런데 1786년(정조 10)에 간행한 『김해부읍지(金海府邑誌)』에서는 유씨가 관향 성씨에서 빠져 있으며, 1832년(순조 32) 에 편찬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김해도호부 성씨조에서도 마찬가지로 유씨가 들어 있지 않다. 유씨는 김해의 관향 성씨이기는 하지만, 이후 김해에 거주하지 않는 성씨 집단이 된 것이다.

1899년(고종 36)에 간행된 『김해군읍지(金海郡邑誌)』에서는 유·맹(孟)·태(太)·백(白)·전(田) 등 5개는 없어진 성씨로 나오고, 당시 김해 지역에 거주하는 성씨로 김해 김씨 등 31개 성씨를 본관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김해를 관향으로 하는 성씨는 김해 김씨, 김해 허씨(金海 許氏), 김해 배씨(金海 裵氏)[분성 배씨(盆城 裵氏)] 셋뿐으로, 김해 송씨(金海 宋氏)와 김해 손씨(金海 孫氏)는 보이지 않는다.

[김해 김씨]

김해 김씨수로왕(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하는 성씨로, 148개의 지파를 형성할 정도로 자손이 번성하였다. 김유신의 큰아들 김삼광(金三光)의 가계가 김윤문(金允文)·김윤중(金允中)-김장청(金長淸)-김웅원(金雄元)-김경주(金擎柱)로 이어지다가 21세손 김수윤(金琇胤) 대에 김천수(金天授)와 김천여(金天與) 두 아들로 나누어지는데, 김천수의 가계는 김상좌(金商佐)[23세]-김호(金浩)-김화제(金華齊)로 이어지다가 26세손 김진유(金振酉) 대에 김승의(金承意)·김계의(金繼意)·김진의(金進意) 세 아들을 두어 가계가 분화하면서 이후 수많은 지파가 형성되었다.

김해 지역 토성이었던 김해 김씨는 관료를 배출하여 사족이 되거나 자연재해, 전쟁, 혼인 관계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가계가 끊임없이 분화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 단계에서 김해 김씨의 분포 지역이 확산되더니, 조선 후기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 단계에서는 거의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858년(철종 9)에 간행된 『김해김씨연계파보(金海金氏聯系派譜)』의 「각파중조서열목록(各派中祖叙列目錄)」에는 김녕군파에서 시작하여 김해 김씨 97개 지파와 그 거주지를 차례로 싣고 있는데, 전국 8도에 분포되어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당시 김해 지역에 거주하는 김해 김씨는 김녕군파와 도총관공파, 진사공파, 한성좌윤공파, 택현파 등 5개 지파의 후손들이었다.

[김해 허씨]

김해 허씨수로왕의 35세손으로 전하는 허염(許琰)[가락군(駕洛君)]을 시조로 하며, 그 아들 허군언(許群彦)[이부시랑], 손자 허자(許資)[병부상서]로 이어지고, 허자의 세 아들 허송죽(許松竹)·허연(許延)·허징(許澄) 대에 가계가 분화하면서 번성하게 되었다. 허연은 허인전(許仁全)·허소구(許少丘)·허천기(許天器)·허유전(許有全), 네 아들을 두었는데, 허인전의 아들은 허의(許毅), 손자가 허옹(許邕)이다. 허유전은 허영(許榮)·허화(許華)·허창(許敞) 세 아들을 두었다.

허옹은 합천 이씨(陜川 李氏) 이식(李植)의 딸과 혼인하여 6남 2녀를 두었다. 이첨(李詹)[1345~1405]이 쓴 허옹의 처 강양군 부인 이씨의 묘지명에는 이씨가 1319년(충숙왕 6)에 허옹과 혼인하여 아들 여섯과 딸 둘을 낳았다고 하는데, 아들은 큰아들 허소유(許少由), 둘째 허광보(許光甫), 셋째 허종도(許宗道), 넷째 허승유(許承孺), 다섯째 허각경(許恪經), 여섯째 허계도(許繼道)이고, 큰딸은 전 봉선대부 전의부정(典醫副正) 장강(張綱)에게, 둘째 딸은 전 봉상대부 삼사부사(三司副使) 이호(李皓)에게 시집갔다.

[분성 배씨]

배씨(裵氏)는 신라 6촌장 중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배지타(裵祗陀)를 원조로 하고, 고려 개국 공신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분성배씨무인대동보(盆城裵氏戊寅大同譜)』에 따르면 배현경 이후 세계가 배은우(裵殷祐)-배곡(裵轂)-배정상(裵呈祥)-배위(裵緯)-배유(裵裕)-배승고(裵承古)-배경의(裵景誼)·배경분(裵景分)·배경성(裵景誠)으로 이어지고, 배경의의 장자 배헌(裵軒)이 김해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분성 배씨가 시작되고 있다.

배헌의 아들 배사혁(裵斯革)은 배원룡(裵元龍)·배천룡(裵天龍)·배운룡(裵雲龍) 세 아들을 두어 가문을 번성시켰는데, 배원룡이 출세하여 분성 배씨 1세조가 되었다. 『분성배씨무인대동보』에는 배원룡의 아들 배서(裵署)는 전객령(典客令), 손자 배단(裵端)은 평장사를 역임한 것으로 나와 있으나 『고려사(高麗史)』 등 관련 자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김해 송씨]

김해 송씨 시조는 송천봉(宋天逢)으로, 고려 우왕(禑王) 대에 대사헌(大司憲),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를 역임하고 김해군(金海君)에 봉하여졌으며, 81세로 사망하였다. 아들은 송호(宋浩)이며, 『씨족원류(氏族源流)』에는 군사(郡事)를 역임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고려사』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딸은 능성 구씨(綾城 具氏) 구성노(具成老)와 혼인하였다.

송천봉 외에 김해 송씨 인물로는 송기(宋耆)가 확인된다. 충렬왕(忠烈王) 대에 정승을 역임한 바 있는 안동 김씨(安東 金氏) 김방경(金方慶)의 묘지명에 “김방경의 어머니는 원흥진부사(元興鎭副使)인 낭장 송기(宋耆)의 딸로, 본관은 김해부(金海府)이다.”라고 하여 송기가 김해 송씨 인물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씨족원류』에서도 김해 송씨 인물로 송기가 신호위 정용낭장을 역임하였고, 딸이 김효인(金孝印)과 혼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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