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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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山 申氏 |
영어공식명칭 | Pyeongsan Sinssi|Pyeongsan Si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광철 |
[정의]
신숭겸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세거 성씨.
[개설]
평산 신씨(平山 申氏) 시조 신숭겸(申崇謙)은 전라도 곡성(谷城) 출신으로 배현경(裵玄慶)·복지겸(卜智謙)·홍유(洪儒) 등과 함께 왕건(王建)을 고려 왕으로 추대하여 개국 공신이 되었고, 평산을 본관으로 하사받았다. 927년(태조 10) 후백제군과 공산(公山)전투에서 태조 왕건을 구출하고 대신 전사하였다. 김해 지역의 성씨 관련 자료에 따르면, 평산 신씨는 17세기 초 지역의 유력한 세거 성씨가 되었다.
[연원]
평산 신씨의 세계는 시조 신숭겸 이후 2세부터 11세까지 신보장(申甫藏)-신홍상(申弘尙)-신경(申勁)-신유비(申愈毗)-신명부(申命夫)-신응시(申應時)-신영재(申令材)-신적(申䙗)-신연(申衍)-신중명(申仲明) 등 단계로 이어지다가, 11세 신중명이 신즙(申楫)과 신군평(申君平) 두 아들을 두면서 가계가 분화하고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12세 신즙은 무송 유씨(茂松 庾氏) 유손(庾蓀)의 딸과 혼인하여 3남 3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신익지(申翼之)·신이(申彛)·신안(申晏)이고, 큰딸은 하양 허씨(河陽 許氏) 허천규(許天圭)와, 둘째 딸은 문화 류씨(文化 柳氏) 유위(柳衛)와, 셋째 딸은 진주 류씨(晉州 柳氏) 류호(柳瑚)와 혼인하였다. 신군평은 『고려사(高麗史)』 열전에 실린 인물로 공민왕(恭愍王) 때 어사대부를 역임하였다. 신군평은 4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신규(申珪)·신혼(申琿)·신수(申璲)·신우(申瑀)이고, 딸은 오중경(吳仲卿)과 혼인하였다.
13세 신익지는 나주 정씨(羅州 丁氏) 정가신(鄭可臣)의 증손녀와 혼인하여 1남 3녀를 두었고, 신이는 아들 둘을 두었고, 신안은 정안 임씨 임세정(任世正)의 딸과 혼인하여 4남 1녀를 낳았다. 신군평의 아들 신규는 평양 조씨(平壤 趙氏) 조천시(趙千禩)의 딸과 혼인하여 1남 1녀를, 신혼은 풍천 임씨(豊川 任氏) 임덕수(任德壽)의 딸과 혼인하여 3남 1녀를, 신수는 연풍 이씨(延豊 李氏) 이경원(李敬遠)의 딸과 혼인하여 1남 2녀를, 신우는 낙안 김씨(樂安 金氏) 김회(金澮)의 딸과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어 가세가 번성하게 되었다. 이후 평산 신씨는 수많은 지파로 나누어지는데, 그 중 사간공파(思簡公派)·문희공파(文僖公派)·제정공파(齊靖公派)·정언공파(正言公派)·한성윤공파(漢城尹公派) 등이 다수를 차지한다.
[입향 경위]
평산 신씨가 김해 지역의 세거 성씨로 처음 소개되는 것은 1730년대에 편찬된 『분성여지승람신증초(盆城輿地勝覽新增抄)』 성씨조부터이다. 그 이전에 편찬된 관찬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 김해도호부 성씨조에서는 평산 신씨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김해향교(金海鄕校) 향안(鄕案) 1623년(인조 1) 11월 항에 평산 신씨 집안 인물로 봉사(奉事) 신영몽(申英蒙)이 입록되어 있고, 1649년(효종 즉위년) 11월 항에는 유학(幼學) 신여안(申汝顔)이, 1664년(현종 5) 1월 항에는 유학 신동우(申東佑)가 올라와 있다. 신여안은 1629년(인조 7), 1633년, 1637년, 1644년(인조 22) 김해향교 유안(儒案)에도 계속 입록되어 있다.
이처럼 김해향교 향안에 입록된 사례로 미루어 평산 신씨는 17세기 초 김해 지역의 유력한 세거 성씨가 된 것으로 보이며, 평산 신씨의 김해 입향은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영몽의 증조할아버지 송계(松溪) 신계성(申季誠)이 밀양에 거주하면서 당시 김해에 살고 있던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을 찾아와 교유하였고, 사망한 후에는 김해의 신산서원(新山書院)에 배향된 것으로 보아 신계성의 사망 이전에 그 후손들이 김해 지역으로 이주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현황]
1904년(고종 41)에 간행된 『경상남도 김해군 가호안(慶尙南道 金海郡 家戶案)』에는 당시 김해 지역의 면리별 가구 수와 가구주의 성명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현재 하책만 남아 있는 이 가호안에 실린 13개 면 4,789호의 성씨 종류는 모두 83개이다. 이 가운데 신씨는 진례면에 4호, 하계면에 2호, 대산면에 7호, 상북면·중북면·하북면·생림이작면·활천면에 각각 1호, 상동면에 5호, 하동면·명지면에 각각 2호 등 모두 27호가 거주하고 있었다.
1929년에 간행된 『김해읍지(金海邑誌)』 성씨조에서는 당시 김해 지역에 거주하는 성씨를 면리별로 조사하여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평산 신씨는 주촌면 원지리와 녹산면 지사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1934년에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는 전국의 지역별 성씨의 종류와 가구 수, 집성촌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김해군에는 2만 2983가구, 108개의 성씨가 분포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 중 신씨는 183가구로 분포 순위가 28위였다.
2000년 통계청의 성씨 본관별 가구 및 인구 통계에 따르면, 당시 김해시 인구는 9만 8985가구에 33만 829명이었고, 여기에 225개의 성과 2,724개의 본관 성씨가 있었다. 이 가운데 100가구 이상 거주하는 성씨의 종류는 김해 김씨 등 128개 성씨였다. 이 통계에서 평산 신씨는 792가구에 2,733명으로 김해 전체 인구의 0.87%를 차지하며 순위로는 25위였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에서는 가구 수는 없고 본관 성씨별 인구수만 조사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당시 김해시 인구는 51만 2517명, 성씨는 143개, 본관은 820여 개로 집계되었다. 이 중 100가구로 추산되는 340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성씨는 김해 김씨를 비롯하여 169개로 확인되며, 평산 신씨는 4,620명으로, 당시 김해 전체 인구의 0.96%이고 순위도 20위로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