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력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41
한자 金武力
이칭/별칭 무력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김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553년 - 김무력 신주군주 부임
활동 시기/일시 554년 - 김무력 관산성전투 참가
성격 무신
성별
본관 김해
대표 관직 신주군주

[정의]

삼국 시대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가락국의 왕자이자 신라의 장군.

[개설]

김무력(金武力)구형왕의 셋째 아들이며, 무력지(武力知), 무력(茂力)이라고도 불렸다. 532년 아버지 구형왕과 함께 신라에 귀순한 후, 540~550년대 진흥왕의 영역 확장 과정에서 한강과 낙동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데 지대한 업적을 세워 신라 내에서 가락국 출신 진골의 정치적 성장 기반을 구축하였다.

[가계]

김무력구형왕과 분질수이질(分叱水爾叱)의 딸 계화(桂花)의 3남이며, 노종(奴宗)·무덕(武德)과 형제간이다. 아들은 김서현이고, 손주는 김유신·김문희 등이 있다. 김무력은 기록마다 이름이 달리 적혀 있는데, 『삼국사기』「신라본기」에는 구형왕의 3남 ‘무력(武力)’으로, 『삼국유사』「가락국기」에는 2남 ‘무도(茂刀)’로, 『삼국유사』 김유신 조에는 ‘호력(虎力)’으로 전한다. 「단양적성비」 등 신라 금석문에 ‘무력’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삼국사기』「신라본기」에 기록된 것이 옳다.

[활동 사항]

김무력은 532년 신라 귀순과 함께 귀족 사회에 편입된 후, 540~550년대에 각지에 일어난 대외 정복 전쟁에 참전하였다. 신라는 백제와 동맹하여 고구려가 다스리던 한강 상류 지역을 탈취한 후, 553년 7월에는 백제가 점유하던 한강 하류 지역을 점령하였다. 김무력은 이때 신라가 새로 점령한 영토에 설치한 신주(新州)의 군주가 되었다. 554년 백제 성왕이 관산성[현 충청북도 옥천군]을 침입하자 김무력이 군대를 이끌고 맞서 싸웠고, 성왕을 비롯한 4명의 좌평과 29,600명의 사졸을 전몰시켰다. 한편, 진흥왕은 신라가 대외 정복 전쟁에서 차지한 지역을 순수(巡狩)하였는데, 김무력은 561년의 창녕 순수, 568년의 북한산과 마운령 순수를 수행하였다.

[묘소]

김무력의 무덤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의 고대 사서에는 기록된 것이 없다. 후대에 이르러 양산 지역의 읍지류와 김해 김씨 보첩 등에서 김무력 부부의 무덤이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경내 영축산 아래에 있다고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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