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형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632
한자 仇衡王
이칭/별칭 김구해(金仇亥),구차휴(仇次休),구충왕(仇衝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김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521년연표보기 - 구형왕 즉위
활동 시기/일시 532년 - 구형왕 신라 귀순
묘소|단소 전구형왕릉 -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구형왕릉로 92-12[화계리 57]
성격 왕족
성별
본관 김해

[정의]

삼국 시대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 있었던 가락국의 제10대 왕.

[개설]

구형왕(仇衡王)가락국[일명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으로, 수로왕의 9세손이자 겸지왕(鉗知王)의 아들이다. 521년에 즉위하였으며, 532년에 신라에 귀순하였다. 『삼국사기』「신라본기」에 김구해(金仇亥), 『삼국사기』 열전에 구차휴(仇次休), 『삼국유사』 왕력에 구충왕(仇衝王)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계]

구형왕은 겸지왕과 출충(出忠) 각간(角干)의 딸 숙(淑)의 아들이며, 탈지이질금(脫知爾叱今)과 형제이다. 『삼국유사』에는 분질수이질(分叱水爾叱)의 딸 계화(桂花)와 혼인하여 세종(世宗) 각간, 무도(茂刀) 각간, 무득(茂得) 각간을 두었다고 전한다.

[활동 사항]

구형왕의 재위 기간 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삼국사기』「신라본기」에서 법흥왕이 524년 9월에 남쪽 변방의 새로 확장한 영토를 순행하다가 가야국 왕을 만났다고 한 사실이 주목된다. 5세기 후반~6세기 전반 신라계 고분군과 제철 유적이 양산·밀양 지역의 낙동강 변에 대거 분포한 점, 6세기 전반 신라의 탁기탄국 진출 등을 고려하면, 524년 법흥왕이 만난 가야국 왕은 구형왕으로 보인다.

한편, 『삼국유사』「가락국기」에는 구형왕 대의 사건으로 “보정(保定) 2년[562] 임오 9월에 신라 제24대 진흥왕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오니, 왕은 친히 군사를 지휘하였다. 그러나 적병의 수는 많고 이쪽은 적어서 대전할 수가 없었다. 이에 동기(同氣) 탈지이질금을 보내서 본국에 머물러 있게 하고, 왕자와 상손(上孫) 졸지공(卒支公) 등은 항복하여 신라에 들어갔다.”라는 기록이 있다. 가락국 멸망은 532년이기 때문에 『삼국유사』 편찬자 혹은 「가락국기」 편찬자가 연도를 잘못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

[묘소]

구형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방형의 석축이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있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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