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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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命順 |
영어공식명칭 | Gu Myungso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인덕 |
출생 시기/일시 | 1900년 3월 26일 - 구명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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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30일 - 구명순 김해 읍내 만세 시위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10일 - 구명순 대구복심법원 징역 1년 집행 유예 3년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50년 3월 1일 - 구명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9년 - 구명순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 |
학교|수학지 | 정신여학교 -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여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구명순(具命順)[1900~1950]은 1900년 3월 26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에서 태어났다. 정신여학교[현 정신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3월 22일 고향 김해로 돌아왔다. 3월 30일 저녁 김해읍교회에서 박덕수(朴德守) 등 수명의 여성 교인을 규합한 후, 밤 9시 반경에 50~60여 명의 군중과 함께 김해군청 앞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구명순은 시위 중 체포되었고, 1919년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구속된 후 40일가량 옥고를 겪다가 풀려났으며, 이후 정신여학교로 돌아가 졸업하였다. 1950년 3월 1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구명순은 201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