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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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石岩 |
영어공식명칭 | Kim Seokam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인덕 |
출생 시기/일시 | 1891년 4월 11일 - 김석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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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김석암 김해장터 만세 시위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30일 - 김석암 대구복심법원 징역 8개월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59년 10월 5일 - 김석암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8년 - 김석암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 |
활동지 | 김해장터 -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로180번길 31-4[동상동 910]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석암(金石岩)[1891~1959]은 1891년 4월 11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동상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에 있었던 김해장터 만세 시위의 주도자 중 한 사람이다. 4월 1일에 김석암은 의용대를 조직하여 각처에 격문을 붙였다. 4월 2일 거사 당일에는 오후 4시경 김해장터로 가서 최계우로부터 태극기를 받아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60여 명의 시위대가 쌀전에서 어물전까지 행진하자, 일본 군경은 재향 군인을 비롯하여 상인과 불량배까지 동원하여 시위대를 진압하고, 시장을 강제로 폐쇄하였다.
김석암은 시위 주도자로 동지들과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검사의 불복으로 공소가 제기되었고, 1919년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부산형무소에서 7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1959년 10월 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김석암은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