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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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桂禹 |
영어공식명칭 | Choi Gyewo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인덕 |
출생 시기/일시 | 1880년 - 최계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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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최계우 김해장터 만세 시위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30일 - 최계우 대구복심법원 징역 8개월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 최계우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경상남도 김해시 안동 |
활동지 | 김해장터 -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로180번길 31-4[동상동 910]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최계우(崔桂禹)[1880~?]는 1880년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안동에서 태어났다. 조병중·김석암·허병(許炳)·최덕관·송세탁·송상진 등과 김해장터 만세 시위를 계획하여 1919년 4월 2일을 거사일로 결의하였다. 먼저 3월 31일 허병으로부터 태극기 수십 개를 전달받고, 4월 2일 사람이 가장 많은 오후 4시경에 장터로 가서 40여 명의 군중에게 태극기를 전달하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때 일본 군경은 일본 재향 군인을 비롯하여 상인·불량배까지 총동원하여 군중의 머리를 칼로 찌르고, 갈고리로 얼굴을 찍는 등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최계우는 주도자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5월 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5월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원심 검사가 불복하고 공소를 제기하여,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최계우는 2011년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