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6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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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成濤 |
영어공식명칭 | Kim Seongd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인덕 |
출생 시기/일시 | 1894년 - 김성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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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31일 - 김성도 진영리장터 만세 시위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6일 - 김성도 부산지방법원 징역 1년 6개월 선고 |
출생지 | 경상남도 김해시 내덕동 |
거주|이주지 | 이주지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진영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성도(金成濤)[1894~?]는 1894년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내덕동에서 태어났으며, 지금의 김해시 진영읍 진영리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31일 김우현·김정태·김용환 등과 함께 진영리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성도 등은 3월 29일에 진영리 도로에서 돈을 갹출하여 김정태에게 만세 시위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도록 하였고, 30일에는 진영읍 여래리 산속에서 깃발·태극기·전단지 등을 만들었다. 31일 장날이 되자, 김성도는 미리 만들어 둔 태극기를 10척이나 되는 대나무 막대기에 매달고 종이로 만든 태극기 수십 장을 살포하며,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김성도는 주모자로 체포되어 4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으로 원심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