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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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龍伊 |
영어공식명칭 | Kim Yongy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인덕 |
출생 시기/일시 | 1891년 1월 1일 - 김용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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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2일 - 김용이 무계리장터 만세 시위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19년 4월 12일 - 김용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김용이 대통령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김용이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경상남도 김해시 유하동 |
활동지 | 무계리장터 -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로 287-22[무계동 189-3] |
묘소 | 김용이 묘소 - 경상남도 김해시 유하동 사리산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김해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용이(金龍伊)[1891~1919]는 1891년 1월 1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유하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이며, 문경공(文敬公) 김탁(金琢)의 17대손이다. 아버지는 김정웅(金鼎雄), 어머니는 신안 주씨이다.
[활동 사항]
김용이는 1919년 4월 12일 김해군 장유면 무계리[현 경상남도 김해시 무계동]의 무계리장터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김종훤(金鐘烜)이 서울에서 독립 선언서를 가지고 오면서 본격적으로 준비되었다. 김종훤이 김승태(金升泰)·최현호(催鉉浩) 등의 인사들과 논의하여 장유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김종훤의 주도로 주민들이 크고 작은 태극기를 만들었고, 4월 12일 무계리 장날에 2,000여 명의 군중이 장터에 모여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시위대가 무계헌병주재소로 행진할 때 헌병들이 무차별 발포하였는데, 김용이·손명조(孫明祚)·김선오(金善五)가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순국하였다.
[묘소]
김용이는 경상남도 김해시 유하동 사리산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김용이는 1977년에 대통령표창,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