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7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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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卞眞壽 |
영어공식명칭 | Byun Jinso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순 |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운동가.
[가계]
변진수(卞眞壽)[1925~2006]는 1925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본관은 밀양이다. 아버지는 변영로이고, 어머니는 이홍순이다. 아버지 변영로는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으며, 일제에 협조하는 글도 쓰지 않은 시인이다. 변진수는 1944년 3월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 봉림리[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봉림동] 출신의 문익상과 결혼하여 김해로 이주하였다. 문익상은 김해에서 최초로 병원을 개업한 인물이며, 아들로 문병조가 있다.
[활동 사항]
변진수는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계양공립국민학교[현 인천계양초등학교]의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44년 3월 결혼하여 김해로 이주하였다. 남편이 공부를 위해 서울에 있는 동안 시어른을 모시고 시댁에서 농사일을 하며 지냈다.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내려와 병원을 차리자, 그때부터 “나는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에 쓰이려고 태어난 사람인가?”라는 고민을 하였다고 한다.
변진수는 1968년 3월 대한적십자 부산경남지사 김해부녀봉사회를 창립하여 회장을 맡았다. 1975년에는 김해부녀상담소를 개소하여 미혼모 상담, 극빈 산모 구호, 직업 알선, 가사 도우미 제도 등 여성을 선도 보호하는 봉사 활동을 하였다. 변진수는 김해부녀상담소를 개소한 이후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뜻있는 여성들과 함께 계를 붓고, 회관 건립을 위한 새마을적금도 몇 년 동안 들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여성을 위한 공간 건립의 뜻을 세운 지 10년 만인 1982년 5월 26일에 김해여성복지회관을 준공하였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여성들의 힘으로 세운 전국 최초의 민립 여성 회관이다.
변진수는 후원 단체인 여성복지회의 조직을 통해 수익 사업을 하여 독립적·자주적·자율적으로 여성 회관을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정하였다. 변진수는 후에 “내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은 황무지였던 김해 땅에 여성 회관을 세운 일이다.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 속에 갇혀 살던 여성들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부당함을 외치며 사회로 나올 수 있는 장을 만든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변진수는 1982년 개원한 새마을유아원 1호[현 김해어린이집]의 초대 관장이 되어 6년간 무보수로 일하기도 하였다. 2006년 8월 7일 당뇨병으로 투병하다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변진수는 문학 활동도 틈틈이 하여 「하나되게 하소서」, 「새나라」, 「꽃동산」, 「아들」, 「행복은」 등의 작품을 남겼다.
[묘소]
변진수의 유골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안치되었다.
[상훈과 추모]
변진수는 1978년에 5,000시간 봉사 활동으로 대한적십자사 표창을 받았다. 1986년에는 국제라이온스협회 부총재 표창, 1987년에는 경남김해부녀봉사회 표창, 1991년에는 김해시장 공로패를 각각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