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07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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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海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병욱 |
출생 시기/일시 | 1926년 - 박해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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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60년 - 박해수 국내 최초 비닐하우스 재배 |
활동 시기/일시 | 1962년 - 박해수 농업기술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63년 - 박해수 동탑산업훈장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66년 - 박해수 경상남도자립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67년 - 박해수 5·16민족상 산업 부문 본상 수상 |
몰년 시기/일시 | 1985년 - 박해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8년 11월 - ‘비닐하우스 최초 재배지’ 표지석 건립 |
출생지 | 부산광역시 강서구 식만동 |
거주|이주지 | 이주지 - 경상남도 김해시 어방동 |
성격 | 농업인 |
성별 | 남 |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활동한 농업인.
[활동 사항]
박해수(朴海秀)[1926~1985]는 1926년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 식만리[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식만동]에서 소작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세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가산을 정리하여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어방동으로 이주하였다. 생계를 위해 감나무 과수원과 양계·양돈 등의 다양한 시도를 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박해수는 농사에도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일본의 영농 서적과 잡지를 구해 연구하고 시험 재배를 거듭하였다.
1959년 2월 한지에 기름을 먹여 만든 보온용 고깔로 배추 재배에 성공하였다. 1960년에 공업용 비닐을 씌워 만든 터널형 온실에서 오이·가지·고추 등을 키워내면서 한국에 비닐하우스가 처음 등장하였다. 비닐하우스의 등장은 농한기에도 고소득의 농작물을 재배하여 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당시 ‘백색혁명’으로 불릴 만큼 한국의 농업 발전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박해수가 개발한 비닐하우스 농법은 전국으로 확산하였고, 직접 운영하던 해원농장에도 견학을 오는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박해수는 해원농장에 자비로 연수원을 세워서 선진 농업 기술을 농민들에게 무료로 연수시켜 주었다. 새로운 영농법 개발과 보급을 위해 헌신하던 박해수는 1980년 과로로 인한 중풍으로 쓰러졌고, 1985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박해수는 1962년 농업기술상, 1963년 동탑산업훈장, 1966년 경상남도자립상, 1967년 5·16민족상[산업 부문 본상]을 수상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해원농장을 두 차례 방문하여 박해수의 노력을 치하하고 격려하였다.
김해시는 2008년 11월 어방동 1045-1에 ‘비닐하우스 최초 재배지’ 표지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