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0983
한자 天理敎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성강현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활동 중인 일본에서 창시된 신종교.

[개설]

천리교는 일본의 에도시대인 1838년 10월 26일 교조 나카야마 미키[中山美伎]가 ‘천리왕’인 ‘어버이신’을 만나는 종교 체험으로 창시한 일본의 신종교이다. 나카야마는 중농 집안 출신으로 신의 계시에 의해 천리교를 창도해 90세에 사망할 때까지 50년간 일렬구제(一列救濟)의 길을 걸었다. 나카야마는 극락과 지옥이 저 세상에 있다고 가르치지 않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나카야마의 계시글을 모은 『친필록』이 천리교의 경전이며, 한국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천리교교전』을 만들어 포교에 활용하고 있다.

천리교의 근본 정신은 양기(陽氣) 또는 양기생활에 있다. 천리교의 신앙 대상인 어버이신은 전 인류를 구제하고 지상에서 양기생활을 실현하기 위해 교조 나카야먀를 통해 현신하였으며, 어버이신의 마음은 인간들이 자녀를 기르는 부모의 사랑을 연상시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천리교는 세계적으로 80개국에 전파되어 120만여 명의 신도가 있다.

한국에는 개항 이후인 1893년에 부산을 통해 처음 천리교가 전해졌다. 일제의 강점이 노골화되면서 천리교도 성장하여 1909년 한국포교관리소가 설치되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교세를 확장하여 해방 직전에는 약 3만 명의 교도와 1,200여 곳의 포교당이 있었으며, 신도의 절반은 조선인이었다.

해방 후 미군정청에서 1945년 11월 12일자로 천리교 조선포교관리소의 폐쇄와 철퇴 명령을 내려, 서울의 경성대교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천리교회는 기독교가 접수하였다.

1948년 천경수양원을 설립해 명맥을 유지하던 천리교6·25전쟁기 천경수양원을 대구로 이전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1952년 대한천리교연합회를 창설하였다.

대한천리교연합회는 국내에 흩어진 교파들을 모아 1953년 대한천리교단[1954년 대한천리교본원으로 개칭]을 출범하였다. 이때 김해 진영읍 여래리에 있던 진영포교소의 박성규도 참여하였다. 이에 반대한 일부 천리교도는 1955년 대한천리교총본부를 발족하였다. 천리교단의 분열은 종속교단파와 자주교단파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일부는 대한천리교실천회를 만드는 등 분열이 지속되었다. 대한천리교총본부가 문교부에 사회단체로 등록되었고, 1963년 10월 재단법인 대한천리교단으로 등록함으로써 종교단체로의 활동을 본격화하였다. 일본과의 교류가 재개되면서 1967년에 일본에서 한국전도청장이 임명되어 교단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이에 반발한 자주파는 1988년 대한천리교연합회를 만들어 독자적 활동을 하고 있다.

[현황]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천리교 활동은 6·25전쟁 직후인 1954년 진영포교소의 박성규가 대한천리교교단 출범에 참여한 것을 전후해 시작되었다. 이후 1960년에 김해 지역에는 김해시 부원동의 금성교회, 진영읍 여래리의 진영교회 등 2개의 교회, 김해시 이북면 장방리[현 한림면 장방리]의 한림포교소와 김해시 불암동의 불암포교소 등이 있었다. 부산 영도의 원남성교회 분규 이후 일파가 1994년 생림면 나전리원남성교회를 지어 김해를 천리교의 근거지로 삼으려 하였다. 원남성교회천리교 한국전도청에 부지를 기증하고, 2002년 화목동에 교회를 신축해 이전하였다. 이 밖에 2010년대 부산의 온천교회대성동에 이주해 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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