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401193 |
---|---|
한자 | 儀禮服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김해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성진석 |
[정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에서 혼례·상례·제례 등 의례 때 특별히 착용하는 복식.
[개설]
의례복은 관혼상제(冠婚喪祭) 등과 같이 전통 의례가 있을 때 특별히 갖추어 입는 예복이다. 대개로 1970년대까지는 전통 복식을 의례복으로 사용했으나, 그 이후로는 기성복이 유행하면서 서양식 복장을 주로 의례복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김해에 남아 있는 전통적인 의례복으로 상례 때 망자에게 입히던 수의(壽衣)는 여전히 삼베나 명주로 만드는 풍습이 대체로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수로왕(首露王)을 기리기 위해 숭선전(崇善殿)에서 거행되는 춘·추향대제에 제관들은 금관조복(金冠朝服), 전사관복(典祀官服), 도포 등을 입는다.
[출생복과 돌복]
근대 이전 전통 사회의 문화가 있던 시대 김해 지역에서는 명주와 같이 부드러운 옷감이나 헌옷으로 자녀의 배냇저고리를 직접 만들어 입혔다. 그리고 아이의 백일옷과 돌옷은 친인척 또는 친정으로부터 선물을 받기도 하고 바느질을 잘하는 주변의 지인에게 부탁하여 만들어 입혔다. 하지만 1970년대 기성복이 유행하게 되면서 출생복, 돌복 등의 유아복을 제조하는 회사가 생겨나기 시작해 집에서 만들어 입히는 경우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는 유아 의류 전문업체가 나타나면서 유행을 선도하였다.
[혼례복]
근대 이전 조선 후기에는 대대적으로 혼례복의 변화가 나타났다. 신랑은 신분의 구분 없이 사모(紗帽)와 단령(團領)에 혁대(革帶)를 차게 되었고, 흑화(黑靴)를 신을 수 있도록 허가되었다. 신부는 붉은색 활옷[華衣] 또는 초록색 원삼을 입었으며, 큰 댕기, 앞 댕기, 다리[髢] 머리에 솜족도리 또는 화관을 쓰고 얼굴에는 연지와 곤지를 찍는 모습이 보편화되었다. 개화기 이후에는 신랑은 양복을 차려 입고, 신부는 한복에 면사포를 쓴 차림새가 늘어나게 되었고, 1920년대부터는 신부의 치마저고리가 연분홍, 옥색, 연두색 등으로 다양해졌고 화관을 쓰는 경우도 많아지게 되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김해와 인근 농어촌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은 도시에서 신식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선호하였다. 이때 신랑은 양복, 신부는 웨딩드레스에 화관을 썼고, 1980년대 이후부터는 신랑, 신부의 패션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제품이 다양해지고 개성적인 스타일도 등장하게 되었으며, 웨딩드레스 색깔도 흰색 위주에서 아이보리색 등으로 다양해졌다.
[회갑복]
근대 이전까지 환갑이나 칠순 잔치의 당사자들은 한복을 입고 큰상을 받았다. 잔치 때 입는 한복은 자녀들의 결혼 때 혼수로 장만해 온 것을 주로 입지만 옷이 낡았거나 없을 때는 새로 맞추어 입었다. 현대에 와서는 주로 연회 형태로 식당에서 행사를 치르고, 당사자는 한복 또는 정장을 입고, 가족이나 손님들은 대부분 정장 차림이 일반화되었다.
[상례복]
근대 이전까지 전통 상례에서 남자는 생광목으로 만든 깃옷 또는 베로 만든 두루마기에 행전을 찼고 건 또는 관을 썼으며, 여자는 삼베 또는 명주로 만든 흰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개화기 이후 현재까지는 서양과 일본의 영향을 받아 복색이 크게 변화하였다. 남자는 검정색 양복을 입고 검정색 넥타이를 맸으며, 베로 만든 건(巾)이나 완장에 행전을 찬다. 여자는 검정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머리에는 흰색 리본을 달거나 검정색 양장에 스카프, 주름치마, 폴라, 가디건 등의 차림이 일반화되었다. 그렇지만, 망자의 수의(壽衣)는 삼베로 만들거나 여유가 있는 집안에서 명주로 만들어 입히던 전통 풍습은 대체적으로 현대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제례복]
근대 이전까지 일반 집안의 제사는 도포를 입고 건을 쓴 차림으로 지냈으나, 현대에 오면서 제례에 대한 관념과 형식이 변화되면서 양복 또는 일상복 차림으로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렇지만 현재 김해에서 수로왕을 기리기 위해 숭선전에서 거행되는 춘·추향대제에서 제관들은 금관조복, 전사관복, 도포 등 규정에 의한 전통 복식을 입는다. 금관조복에 함께 쓰는 금관은 금량관(金粱冠)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문무관(文武官)이 조복 착용 시에 함께 쓰는 관으로서 징두리 앞이마 위에 있는 양(粱)만 검게 하고 나머지 부분은 금빛으로 만든다. 조복(朝服)은 왕의 앞에서 조하(朝賀) 때 입는 예복을 말하며, 적초의(赤綃衣), 적초상(赤綃裳), 청초중단(靑綃中單), 폐슬(蔽膝)에 대(帶), 후수(後綬), 패옥(佩玉), 화(靴)와 홀(笏) 등을 갖추어 입는 복식이다.
[명절복]
근대 이전까지는 설과 추석 등 명절에 어른들은 한복을 차려입고 아이들은 명절 옷을 따로 만들어 입혔다. 남자아이들은 색동저고리를 비롯하여 풍차바지, 조끼, 마고자에 까치두루마기 또는 일반 두루마기를 입히고 집안의 형편에 따라서 전복이나 복건을 입고 쓰게 했다. 여자아이들은 색동저고리에 치마, 배자, 두루마기를 입고 조바위, 댕기, 굴레를 썼으며, 주머니와 노리개도 채웠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아이들에게 색동저고리와 두루마기, 치마, 배자, 조바위 등을 입히지만 형태와 색상은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