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기소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401234
이칭/별칭 「등지」,「등지노래」,「등자」,「등지소리」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우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기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82년 7월 28일 - 「모심기소리」 서진찬에게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5년 - 「모심기소리」 『한국의 민속음악』-경상남도 민요 편에 수록
채록지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우계리 지도보기
성격 민요
기능 구분 노동요
가창자/시연자 서진찬

[정의]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우계리에서 모심기를 할 때 불렀던 노동요.

[개설]

이앙법으로 진행하는 벼농사에서는 볍씨를 뿌려 모가 어느 정도 자라면 옮겨 심는다. 모를 심기 편하도록 모판에서 뽑아내는 것을 모찌기라고 한다. 모찌기를 한 모를 줄에 맞추어 심는 것을 ‘모심기[모내기]’라 한다. 「모심기소리」는 모심기 작업 중에 부르는 노동요인데, 김해 지역에서는 「등지」·「등지노래」·「등자」·「등지소리」라고도 부른다.

[채록/수집 상황]

「모심기소리」는 1985년 간행된 『한국의 민속음악』-경상남도 민요 편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82년 7월 28일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우계리에서 권오성이 서진찬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김해 지역의 「모심기소리」는 후렴이 없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짧은 장절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먼저 노래하는 사람이 한 장절을 메기면 다른 사람이 다른 노랫말로 된 장절로 노래하며 받는다. 노동요이기 때문에 노랫말 내용이 작업의 진행과 함께 변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중심이 되는 노랫말은 있으나 모심기가 긴 시간 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내용의 노랫말로 이루어진다. 모심기 때 부르는 긴등지는 ‘한강에다/ 모를 부어/ 모찌기가/ 난감하네’와 같은 내용이 자주 등장하고, 짧은등지는 ‘졸이자[조리자, 조루자]’ 소리와 같은 형태에 ‘딸이 참을 가져오는데 아버지인 나보다 사위에게 더 준다’는 등의 노랫말로 반복되기도 한다.

[내용]

[메기는 소리] 물낄러 헝허정처청 헐어 놓고오[물길 청청 헐어 놓고]/ 주인네헤 양반 어데 갔오이[주인네 양반 어데 갔소]//

[받는 소리] 무너야하 전복을 손에 들고오[문어야 전복을 손에 들고]/ 첩의야 방에 놀러 갔소 첩의야 방애 놀러 갔오[첩의야 방에 놀러 갔소]//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모심기[모내기]는 작업을 하는 논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날이 밝으며 시작하여 날이 저물면서 마무리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모심기소리」는 일반적으로는 작업 속도에 맞추어 긴등지와 같이 느리게 불렀다. 그러나 점심 참이 오는 시간이 되거나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경우 짧은등지[짜른등지]와 같이 빠르게 부르기도 한다.

[현황]

모내기 방식이 모판에 볍씨를 뿌려 키우고, 이를 기계의 힘을 빌려 심는 방식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힘을 빌리거나 모아서 작업하는 방식 자체가 사라졌다. 논농사 전 과정에서 사람들의 힘을 북돋우는 노동요를 부를 필요성이 현저하게 낮아져 부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재는 노동의 현장에서 전해지기보다는 일부 「모심기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유희요로 부르는 정도로 전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김해의 「모심기소리」는 모심기 작업의 고단함을 풀어내는 가사도 있지만, 논 주인이 일을 안 하고 다른 곳에 가버린 것에 대한 불평, 정인(情人)에 대한 불평과 그리움, 본인보다 사위를 더 챙기는 딸에 대한 불평, 농사를 지어 큰 수확을 바라는 희망 등 다양한 내용의 사설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모심기소리」가 김해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정서를 담아내는 훌륭한 구비 전승임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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